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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연의패션리포트] ‘Anniversary’ 브랜드 명품을 기다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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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탄생 10주년을 맞은 국내 브랜드 ''구호''(사진<上>). 컨버스의 ''100주년 기념 신발''(사진<下>).

올해도 ‘OO주년’을 내세우는 패션 브랜드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몇십 년씩 성장해 온 브랜드들이 극도로 상업적인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고 있지만 말이다. 해외에 비해 10년, 20년을 넘기며 장수하는 국내 패션 브랜드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급 품질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가 외국에는 그토록 많은데 왜 우리는 그런 브랜드가 없을까. 국내 패션 브랜드는 물론 꽤 많은 국민도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 먼저 떠오르는 변명은 이렇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적어도 평균 50년에서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50년 된 브랜드가 축적하고 있는 노하우와 제품 수준은 5년 된 브랜드와 비교할 바가 안 된다.

 
2007년 패션계는 각종 ‘생일 축하 파티’로 가득했다. 프랑스의 대표 럭셔리 브랜드인 디올은 ‘회갑연’을 열었다. 발렌티노는 45주년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회고 패션쇼를 보여주고 돌연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화려한 무늬가 트레이드마크인 브랜드 푸치(Pucci) 역시 6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축하 행사를 했다. 하나의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단일 품목 자체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도 이어졌다. 펜디의 ‘바게트 백(길쭉한 프랑스식 바게트 빵 모양을 닮아 생긴 별명)’이 세상에 선보인 지 10년이나 지났음을 축하하는 자리도 있었다. 젊은이의 빈티지풍 운동화의 대명사가 된 ‘컨버스’의 100주년 기념일도 큰 행사였다.

나이는 달라도 이들의 ‘생일잔치’는 비슷하다. 대대적인 홍보 행사를 벌이거나 ‘그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매 제품)’을 만들어 판다. 혹은 디올처럼 60년을 돌아보는 ‘브랜드 북’을 만들거나 기념 패션쇼를 하기도 한다.

기념일은 진정으로 패션하우스의 유산과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마당이 되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숫자에 집착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을까. 1972년부터 현재까지 35년간 펜디 하우스를 진두지휘하고, 동시에 가브리엘 샤넬의 뒤를 이어 83년부터 샤넬 하우스를 맡고 있는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또 35년 동안 프라다를 전설적인 브랜드로 만든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 같은 이들은 반대로 기념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선함과 새로움을 생명처럼 여기는 패션의 속성으로 보더라도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굳이 알리는 게 그리 유익한 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의 해석이다. 또 젊고 재능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손을 거쳐 전통의 브랜드들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게 최근의 흐름이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디자이너들로서는 ‘양보할 때가 왔다’는 괜한 신호를 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국내의 많은 브랜드도 올해 특별한 ‘생일’을 맞는다. 미니멀한 여성복의 대표 브랜드인 ‘구호’는 10년을 넘겼다. 치열한 국내 여성복 시장에서 ‘타임’과 ‘마인’은 20년이라는 세월을 지켜왔다. 주5일 근무제로 큰 타격을 본 남성 정장 브랜드 ‘갤럭시’도 꿋꿋이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25주년이 되었다. 기업의 튼튼한 지지 기반 없이 디자이너 브랜드로서 좋은 반응을 얻어 온 ‘앤디 앤 뎁’도 내년이면 10주년이 되고 해외진출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장수 패션 브랜드’들은 힘든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숨고르기’를 시작하는 단계다. 생일잔치가 지난 세월의 숫자만을 축하하는 데 그치지 말고 브랜드의 유산과 정신을 되새기며 미래를 준비하는 자리가 되면 좋지 않을까.

펜디의 ''10주년 기념 바게트 백''.

강주연 패션잡지 엘르(ELLE)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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