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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문 “거북선과 싸운 일본배 아나요 나와 다른 것 아는 게 세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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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12일 경원대 예음홀에서 ‘글로벌 시대의 문화, 문화인’이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경원대는 이날부터 각계 명사 12명을 초청해 매주 수요일 강의를 이어가는 ‘지성학 릴레이 강좌’를 시작했다. [사진=최승식 기자]

12일 오후 경기도 성남의 경원대(총장 이길여) 예음홀. 615명이 들어가는 1, 2층 좌석을 학생들이 가득 메웠다. 이어령(76·이화여대 석좌교수) 본지 고문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지성학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순신과 거북선을 모르는 학생은 없죠. 그럼 거북선을 상대한 일본 배는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이 고문이 묻자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고문은 “사실 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내 것’만 알지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세계화)’이 안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나와 다른 것을 관계론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우리말을 자세히 봐라. 외래어를 도입하면 꼭 한국말을 붙인다. ‘역전 앞’ ‘처가 집’ 등 모두 한자어에 한글을 붙인 것이다. 반면 영어는 라틴어 등을 받아들였지만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은 민족은 하나지만 다문화를 흡수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bal+localization)의 특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 고문은 “코스로 된 서양 요리와 달리 한국에는 이것저것 섞는 비빔밥이 있다”며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글로벌 세계로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문화예술계 명사 12명이 릴레이로 강의하는 경원대의 ‘지성학’(2학점)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 600여 명의 학생은 물론 명강의를 들으려는 교직원과 주민까지 찾아온다. 이날도 수업을 신청하지 못한 학생과 직원들은 교내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들었다.

정석원(20·회계학과 2)씨는 “어떤 학문이든 철학적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들을 강의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학교 건물 관리 직원 전성근(54)씨는 “학생들이 이런 명강의를 들으면 등록금이 아깝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명사만 부른다=6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명사들이 강단에 선다. 『칼의 노래』를 쓴 소설가 김훈, ‘태왕사신기’ ‘모래시계’를 제작한 프로듀서 김종학, 가수 조영남, 연극인 박정자, 국악인 장사익, 영화배우 이순재 등 강사진이 화려하다. 주제는 ‘글로벌 시대의 문화, 문화인’이지만 명사들은 경험담이나 외국 사례를 자유롭게 소개하며 학생들과 대화한다.

이 강좌는 학생과 지역 주민에게 유명하다. 지난해 1학기 ‘글로벌 시대의 한국,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정운찬 서울대 교수, 방송인 손석희 등 명사 12명이 릴레이 강의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2학기에는 ‘타 문화와 경제를 이해하는 세계인’ 주제로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등 경영인 10명이 강의했다. 국내 대학에서 명사 몇 명을 초청해 특강을 한 적은 있었지만 한 학기에 12명을 매주 초청한 것은 경원대가 처음이었다.

호응도 뜨거웠다. 학교 측은 신청이 몰려 수강 인원을 300명에서 600명으로 늘리고, 강의 장소도 일반 강의실에서 강당으로 바꿨다. 주민과 학부모들에게도 개방하자 손석희씨 강의에는 주부만 50여 명 넘게 몰렸다. 올해도 수강 신청자가 몰려 2분 만에 마감됐다. 두 번째 듣는 학생도 많다.

강의 진행을 맡은 김덕준(교양학부) 교수는 “교양 독서를 하지 않는 학생들의 지적 편식을 막고 고른 소양과 넓은 시각을 길러 주기 위한 것”이라며 “학생·학부모·주민의 반응이 좋아 강좌를 더 튼실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글=백일현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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