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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경기 풀리니 분실물 안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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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도쿄의 유실물센터에서 보관기간(6개월)이 지나 분실물의 소유권을 획득한 한 철도회사 관계자들이 짐을 실어 가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일본 도쿄(東京) 이이다바시(飯田橋)의 '경시청 유실물 센터'의 1층 창구 앞에서 20대 중반의 한 젊은이가 갑자기 친구들과 "얏타(야호)"를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6개월여 전에 동네 은행 앞 길바닥에서 습득해 신고했던 현금 30만원이 본인의 '소유물'이 됐기 때문이다.

이 센터는 도쿄 23개구에 있는 96개 경찰서와 지하철, 그리고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각종 민영철도(私鐵) 등에 접수된 분실물이 총 집결하는 곳이다. 범위로 따지면 도쿄도에 사는 800만명과 수도권 3300만명의 분실물을 관장하는 셈이다.

경찰서의 경우 2주일, 지하철 등 철도의 경우 자체 역에서 5일간 보관하고 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모두 이곳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6개월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소유권은 습득자나 도쿄도, 또는 철도회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이곳 근무 10년째인 하스다 노부오(蓮田信男)계장.

그는 요즘 유실물센터에 들어오는 물건들의 변화를 통해 일본의 경기 회복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경기가 바닥을 헤매던 1990년대 후반만 해도 1년에 130만건의 분실물이 이곳으로 흘러왔는데 지난해는 187만건이나 됐어요.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는 거죠. 근데 실제 '내가 주인입니다'하고 나선 숫자는 오히려 줄었더라고요. 그만큼 경기가 회복돼 여유가 생긴 거죠."

실제 경기가 급속히 회복된 지난해 이곳에 들어 온 우산은 39만6700개. 비올 때마다 평균적으로 2900개가 접수된 셈이다. 90년대 후반의 30만개에서 30%가량 껑충 뛰었다. 그러나 정작 찾아가는 이는 0.3%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4층 건물의 지하 1층 창고에는 우산만 15만개가 널려 있다. 자기 것을 찾으려 해도 도무지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현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5년 사이를 보면 "돈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한 액수는 99년의 84억4000만엔에서 지난해는 73억2000만엔으로 줄었다. 하지만 "돈을 주웠다"고 신고한 사람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흰 봉투 안에 든 300만엔이 결국 습득자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분실물 처리현황을 보면 총 습득물 중 16.7%만이 주인에게 돌아갔고 개인 습득자에게 돌아간 것은 62.4%나 됐다. 또 습득한 기관에 귀속된 경우도 20.9%나 됐다.

그러다 보니 민영 철도회사.도쿄도.경시청은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예컨대 경시청의 경우 유실물센터에서 6개월 경과한 물품들을 할인점이나 잡화점에 경매로 판다. 하스다 계장은 "디지털 카메라나 귀금속 같은 '인기 품목'은 경쟁이 치열해 꽤 고가로 팔린다"고 귀띔했다.

마침 이날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보관기간이 지난 물품들을 트럭에 실어 '회수'해가던 JR의 한 관계자는 "매달 한번씩 분실물을 걷어가는데 2~3년 전만 해도 소형 트럭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대형 트럭을 가져온다"며 "'단가'가 싼 우산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양이 워낙 많아 제법 큰 돈이 된다"고 웃었다.

일본에서 "주운 물건은 신고해야 한다"는 법이 생긴 건 무려 1286년 전인 718년. 이에 따라 생겨난 정부의 유실물 담당 부서 인원은 1733년까지만 해도 2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6명에 달한다.

1958년부터는 분실물을 되찾은 주인이 습득자에게 5~20%(보통 10%)의 사례금을 줘야 하는 법규도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유실물센터에 접수되는 분실물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경찰서를 통해 이곳에 온 분실물들이 보관돼 있는 2층 창고를 둘러보니 가방과 의류 등 가지런히 놓여 있는 소품들 사이로 스키나 골프백, 심지어 휠체어와 목발도 놓여 있다.

신칸센(新幹線) 같은 곳에서 많이 습득되는 과일선물 같은 음식물은 바로 폐기한다고 한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물은 일단 동네 과일상에 돈을 받고 팔아 현금 형태로 보관했지만, 음식물에 독극물을 투입한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무조건 폐기하게 됐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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