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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파일>로버트 앨드리치 감독 "지옥의 라이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국 대공황의 절정기인 1933년,직업없는 떠돌이들의 무임승차는 골칫거리였다.19번 열차 주임 샤크(어네스트 보그나인)는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잡아내 죽이기까지 하는 잔인한 뚱보.그의 기차를 거저 탄 떠돌이는 단 한명도 없었는데 떠돌이들의 영웅 에이 넘버원(리 마빈)이 이에 도전한다.각 지역 열차 승무원과 떠돌이들이 돈내기를 하는등 두사람의 대결이 큰 화젯거리가 된 가운데 넘버원은 애숭이 떠돌이 시가렛(키스 캐러딘)과 포클랜드행 기차에 오르고 쫓겨 나고 기어오르기를 반복한다. 산업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낙오된 이들과 산업사회에 무사히편승한 이들을 상징적으로 그린 이 영화는 로버트 앨드리치 감독의 후기 대표작에 속한다.불가능한 목적이나 제도적 억압에 도전하는 인간의 집념을 고지식할 정도로 꾸준히 영상에 담아온 앨드리치. 60~70년대 젊은 감독들이 그의 작품에 반한 것도 잔재주를 부리지않는 남성다운 주제 때문이었다.『지옥의 라이벌』의라스트신은 앨드리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총 한방으로 끝나는 요즘 영화와 달리 두 주인공은 달리는 기차 위에서 상 대편이 나가 떨어질 때까지 온몸으로 싸운다.그것은 단순한 증오감 때문이 아닌 자존심의 대결이다.넘버원이 시가렛에게『최고가 될 기회가 있었는데 너는 되먹지 못해 그 기회를 놓쳤다』고 외치는 것은 떠돌이들에게도 지켜야할 룰과 긍지가 있 었다는 것을 말해준다.『The Emperor of the North Pole』은그것을 지킨 진짜 사나이만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인 것이다.
기차와 인간의 달리기를 비교한 주제곡,오리건주의 아름다운 전원풍경 모두 좋지만 아무래도 두 노장 스타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화다.술주정꾼 총잡이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던 『캣 볼루』의 리 마빈,연애 한번 못해본 못생 긴 노총각을연기한 『마티』로 역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던 어네스트 보그나인,그리운 얼굴들이다.
앨드리치 감독 작품세계를 더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허슬』과『소돔과 고모라』정도로 만족해야할 듯.
〈비디오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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