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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ccess Style]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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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잠깐 벽지에다가 뇌를 렌트하고 왔어요.”(개그맨 지상렬이 예능 프로그램 도중, 잠시 딴 생각을 했다며)

“리얼리티의 호수에 연기라는 돌멩이로 물수제비를 떴다.”(개그맨 죄민수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연기를 해 화제가 됐다고 주장하며)

“우선 파를 먼저 썰어놓아야 해요. 신혜성을 먼저 썰면 도마에 피가 묻기 때문에.”(가수 에릭이 자기 팬카페에 쓴 ‘혜완(혜성·동완) 찌개 만드는 법’ 가운데서)

밑에 달린 설명 없이 위의 글들을 읽어보라. 대부분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하더라도, 정황상 납득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이쯤 되면 외계어라고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들 연예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4차원 연예인’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언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왔다’는 표현도 쓴다.

안드로메다는 지구로부터 22광년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 곳까지의 거리를 서울시청에서 부산역까지의 거리(약 400km)로 환산해보자. 이 거리에 비하면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정확히 지구 반대편인 대척점까지의 거리는, 서울시청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거리에 해당한다. 그만큼 먼 곳이다. 왜 하필이면 안드로메다일까? 아마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은하여서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인간의 몸을 얻기 위해 여행하는 곳도 안드로메다 성운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안드로메다여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요즘 인터넷은 이해 못할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과거에도 엉뚱한 연예인들은 많았다. 유명 인사들도 꽤 있었다. 당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들이 요즘은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조사에서 4차원 연예인 1위로 등극한 연기자 최강희(31)가 좋은 예다. 그는 독특한 언행으로 숱한 매니어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네티즌들이 열광해 마지않는 그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자. 4차원이나 안드로메다 코드라는 말이 실감난다. 날씨가 무척 추웠던지, 온풍기에 코를 박고 있는 사진을 여러 장 올려놨다. 사진 설명이 해괴하다. ‘온풍기와의 교신 실패.’

‘외국인과 놀아보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도 인상적이다. 외국인과의 단계별 대화 시도법이다. “1.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2. 간단하게 (익스큐즈미 정도로)나의 처지를 설명한다. 3.그 다음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4.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나라 말로)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다. 5.상대도 무언가 말을 한다면 대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글 밑의 주석이 흥미롭다. “만약 2~4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 중 상대가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진다면, 일단 놀이를 급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 쉬는 것이 좋다.” 최근 최강희는 자신의 4차원 캐릭터를 극대화한 롯데제과의 음료 ‘류’ 광고로 인기 몰이중이다. 멍한 표정의 그는 이 CF에서, 음료가 담긴 페트병으로 자신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친 후 ‘어, 도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남긴다.

4차원 연예인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면서, 이들의 계보도 나날이 늘고 있다. 남성적 백치미를 보여준 김종민이 1세대라면, 자신을 ‘희님’이라고 부르는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2세대다. 지난 해 롯데삼강 아이스크림 CF에서 일명 '엉짝 댄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서우가 3세대. 이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4차원 스타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연예인뿐만이 아니다. 일반인들 가운데도 비슷한 유형의 유명인이 속출하고 있다. 외계와 교신한다면서 말끝마다 ‘빵상, 빵상’ 하던 일명 ‘빵상 아줌마’ 황선자씨는 케이블 채널의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자마자 전국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경제공화당 총재 허경영씨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들의 인기 비결은 뭘까. 조인스펀센터의 강진영 소장에게 물었다. 그는 “요즘 세상, 특히 방송과 인터넷이 기발한 유머 감각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라고 분석한다. 시청자들은 ‘최선을 다해 만든 만큼 많이 사랑해주세요’를 연발하는 연예인들에게 싫증을 낸다. 네티즌들은 도덕 교과서 같은 뻔한 얘기만 해대는 유명인들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기치 않은 말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행동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4차원이나 안드로메다 유형의 성공 전략은 직장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기발한 유머 감각은 지루한 직장 생활에서 남의 주목을 끌 만한 요소다.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다. 엉뚱한 언행이 일상이 돼서는 안 된다. 수명이 짧은 연예인과 달리, 4차원이나 안드로메다 형 일반인은 상태가 심각해지면 점차 사회에 부적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부류가 대개 끝이 안 좋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언행이 지나치면 병리 현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광일씨는 “자신이 탁월한 존재라는 착각에 심하게 빠질 경우 온갖 허구와 망상을 현실과 혼동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실에서라면 4차원이나 안드로메다까지 가지는 말라는 얘기다. 3.5 차원이나 우리 은하계 안에 머물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안녕하세요? 부장님’이라는 인사를 하기가 지겹다고 치자. 듣는 사람도 식상해 하고. 그렇다면 어느 날 이렇게 인사말을 바꿔보라. ‘어젯밤은 외계와 통했죠? 부장님. 빵상, 빵상.’ 그렇다고 이런 말을 매일 하지는 마라.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직장 생활에서 성공은 4차원처럼 잡기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안드로메다 성운만큼이나 멀어져 버릴 것이다.

이여영 기자

◇안드로메다 코드=일반인의 상식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의 성향을 뜻한다. 일명 ‘4차원’이라고도 한다. 독특한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자신의 처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통칭하는데, 정도가 심할 경우 ‘분열형 인격장애’로 연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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