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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워싱턴의 추억’ 그 후 10년 … 엇갈린 인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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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에서 장·차관에 오른 유명환 외교부 장관, 김성환 외교부 2차관, 김영호 행정안전부 1차관과 대검 기획조정부장에 발탁된 이인규 검사장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10년 전인 1998년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함께 일했다는 것이다. 유 장관은 주미공사, 두 김 차관은 각각 참사관과 행정참사관, 이 검사장은 법무협력관이었다.

당시 워싱턴엔 금융위원장(장관급)에 발탁된 전광우 세계은행(IBRD) 수석연구위원도 있었다. 신재민 문화부 2차관은 한국일보 특파원, 김상협 청와대 미래비전비서관은 매일경제신문 특파원으로 워싱턴에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워싱턴대에서 1년간 연수생활을 할 때였다. 이 대통령과 이들은 워싱턴의 좁은 한인사회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만났다. 안면을 튼 정도에 머문 사람이 있고, 긴 연분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 “그때는 아예 몰랐다”는 이도 있다.

선거법 위반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났던 이 대통령은 당시 금욕생활을 자청했다. 워싱턴 근교 방 2개짜리 허름한 아파트에서 중고 승용차를 구입해 몰고 다녔다. 침대와 책상, 4인용 식탁이 가구의 전부였다. 처음엔 라면 박스를 놓고 식사했다. 전화기도 이 라면 박스 위에 올려놓고 지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이 대통령 가족은 미국 서부로 여행을 떠났다. 이 대통령이 “돈을 낭비하지 말자”고 우겨 일가족 6명은 렌터카 한 대에 타고 열 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이 대통령은 유학생들과 어울리며 막걸리 폭탄주로 신고식을 했다. 골프 라운드에 나서고, 버지니아의 한인 교회를 다녔다. 보기 플레이어(평균 90타)인 그는 특파원들과의 골프 모임에서 롱기스트상도 받았다. 미국식 더치 페이(각자 비용 분담) 방식이었다고 한다. 신재민 차관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과 골프 라운드가 이뤄지면 어떤 때는 공무원이 끼고, 때론 토론도 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워싱턴엔 정치인들도 있었다. 97년 대선에 국민신당 후보로 나섰다가 패한 이인제, 98년 경기지사 선거에 떨어진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워싱턴에 체류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대학에서 연구하던 손 대표와 뜸하지 않게 만났다. 특파원의 아이 돌잔치에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난 적도 있다. 고려대 후배인 홍준표 의원은 아예 이 대통령 집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김영삼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이었던 박세일 전 의원, 2부속실장을 지낸 정병국 의원도 정권이 바뀌자 워싱턴에 살았다.

워싱턴은 이 대통령에게 자성과 함께 인생 3막의 기회를 열게 한 발판이었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꿈을 가다듬은 회생의 터전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그는 1개월쯤 뒤 유명환 장관을 앞세워 워싱턴을 방문한다. 그때 워싱턴 사람들은 그의 참모가 되거나, 손 대표처럼 정치적 경쟁자가 되어 있다. 10년 세월이 바꾼 인연들이다.  

최상연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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