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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관리 어떻게 … 목조건물 140채 창덕궁, CCTV는 2대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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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흥인지문<左>엔 적외선 감지기가, 돈화문<右>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火魔)로 소실된 지 10일로 딱 한 달이 된다. 시커멓게 타버린 숭례문은 요즘 높다란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다. 길 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버스에 탄 승객들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가림막 안의 숭례문은 어떤 모습일까’ ‘복구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재발 방지 대책은 마련되고 있나’ 등 궁금증이 크다. ‘문화 국치(國恥)’에 비유될 만큼 커다란 상처를 안겨준 숭례문 화재가 남긴 숙제를 알아봤다.

9일 오후 서울 종로6가 ‘보물 1호’ 흥인지문에 ‘삐~’ 소리가 울렸다. 기념사진을 찍던 외국인 관광객의 실수로 적외선 감지기가 작동됐다. 2분30초 뒤 경비업체로부터 통보를 받은 구청 관리인 2명이 나와 주변을 확인했다. 작동 7분여 만에 경비업체 순찰차가 도착했다. 숭례문 참사 이후 종로구청은 흥인지문 앞에 컨테이너 초소를 설치했다. 일용직 직원 2명, 3개조가 24시간 상주한다. 감지기도 4대 늘렸다.  

◇예산 확보에 골머리=이달 초 서울 와룡동 창덕궁의 돈화문 앞에 높이 6m의 ‘가로등’이 섰다. 가로등 끝엔 전구 대신 360도 회전이 가능한 폐쇄회로TV(CCTV) 2대가 들어 있다. 관리사무소는 또 야간 당직자를 기존 2명에서 4명으로 늘렸다. 2시간에 한 번 경찰차가 담 주변을 순찰한다. 그러나 직원들 얼굴에선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목조 건물만 140채, 외벽 둘레가 4㎞에 이르는 창덕궁을 지키기엔 역부족이어서다.

관리소 측은 1월 CCTV 200대 설치를 위해 예산 30억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아직도 승인이 나지 않았다. 이달 초 설치한 카메라 2대는 자체 예산으로 충당했다. 안정열 관리사무소장은 “지금 상태론 화재가 나도 시민 제보가 없으면 근무자가 알아채기 어렵다”고 한숨 쉬었다. 문화재청과 전국 지자체들은 ‘제2의 숭례문 참사’를 막기 위해 자체 점검과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 조사 결과 서울 시내 주요 목조 문화재 118곳 중 24곳에 경비인력과 방재·방범 시설이 전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시와 자치구는 흥인지문 등 주요 건조물 19곳에 75명을 배치했다.

제주도의 자체 점검 결과 도내 목조 문화재 31곳의 60%(19곳)가량에 복원용 실측도가 없었다. 8곳엔 소화전 설치, 11곳엔 보험 가입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예산이다. 제주도청은 “점검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선 총 43억원이 필요하다”며 “문화재청에 예산을 요청했지만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충남도의 경우 884개의 목조 문화재에 소방시설 등을 마련하려면 모두 519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소방방재본부는 “화재탐지 장치는 100㎡당 200만원, 스프링클러는 2000만원이 든다”며 “재정이 빈약한 지자체로선 불가능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화재 매뉴얼 마련 중=문화재청·소방방재청은 문화재 화재 매뉴얼을 마련 중이다. 복원실무반 관계자는 “예전엔 모든 문화재를 통칭한 매뉴얼밖에 없었으나 이제 목조건물 등 유형별로 대응이 가능하도록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5~6월 완성 예정인 매뉴얼엔 화재 예방부터 자체 초동 진압, 소방관의 화재 대응까지 전 과정이 담긴다.

경찰은 10일 숭례문 방화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내용엔 문화재청·중구청·소방당국·경비업체의 과실 여부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근무한 것처럼 일지 등을 조작했던 혐의로 중구청 공무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을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에 대한 소방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아 뚜렷한 과실이 없는 한 사법적인 책임을 묻기 어렵다”며 “법규 개정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명백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천인성·이현택 기자. 내셔널부,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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