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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들에 단비 되자” 뭉친 대학생 12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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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근심, 염려, 걱정, 암덩어리 다 나가라! 하하하!”

7일 서울 사당동 암시민연대 사무실. 암환자를 위한 웃음 치료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웃음치료 전문가협회 이성미 부회장의 목소리가 커지자 암환자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커졌다. ‘몸을 두드리면서 20초 웃기’가 끝나자 창백했던 참가자들의 얼굴엔 발그레한 생기가 돌았다. 10여 명의 환자는 서로에게 장난감 안경과 대머리 가발을 씌워줬다. 이들은 그 모습이 우스워 또다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지난해 식도암을 진단받고 투병 중인 안순희(52·서울 북아현동)씨도 이날 수업에 참석했다. 안씨는 홀로 병마와 싸우다 보니 늘 우울했다. 지난해 말, 안씨는 인터넷을 통해 암 환자를 위한 ‘바보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바보처럼 근심·걱정 없이 살아야 건강해진다’는 모토가 마음에 들었다. 안씨는 “함께 얘기하고 웃으면서 잊었던 희망을 찾게 됐다”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라는 뜻의 라틴어)’을 마음에 새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바보학교는 암환자를 돕는 대학생 동아리 ‘구름’이 기획한 것이다. 구름은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 등에 재학 중인 학생 12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암환자 포털 사이트(9room.org)도 구축했다.

◇취업 대신 봉사 선택=구름 회원 중에는 암환자 가족이 많다. 김호열(28·성균관대4) 구름 대표의 아버지도 4년째 위암과 싸우고 있다.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은 뒤 어머니는 인터넷을 배웠다. 암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허황된 정보에 속아 돈을 날릴 뻔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의 가족이 우리 어머니처럼 잘못된 정보에 현혹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암 환자를 위한 식이요법을 강의하는 ‘바보죽 수업’도 이런 이유에서 탄생했다.

지난해 3월 김씨는 친구 강석태(27·성균관대4)씨와 둘이서 구름을 만들었다. ‘뙤약볕 같은 투병생활의 고달픔은 가려주고, 단비를 내리는 구름이 되자’는 뜻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난 암환자 가족, 신문사 인턴을 하며 알게 된 대학생들이 속속 이 모임에 동참했다. 구름 멤버인 김홍기(27·고려대4)씨는 “행정고시를 준비할 계획이었는데 이제는 보다 의미 있는 일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김호열씨는 구름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지난해 가을 휴학했다. 그는 7학기 평균 학점이 4.0(4.5만점)이다. 취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토익 책 대신 암 관련 서적을 뒤지며 정보를 모으고 있다.

◇암환자 포털 ‘9room.org’=구름의 첫 번째 과제는 암 전문 포털사이트의 구축이었다. 환자와 가족들이 암에 관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포털사이트 ‘구름’은 올 1월 문을 열었다. 대학생 기자단 20명의 지원을 받아서다.

대학생 웹진 기자들은 두 달 동안 ‘유방암을 이겨낸 웃음치료사’ ‘영양사가 말하는 암환자들을 위한 식습관’ ‘평온한 죽음을 위한 제언’ ‘병원 탐방’ 같은 환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담긴 기사를 웹진에 올렸다.

문화행사를 기획해 추진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구름은 지난해 8월 가족과 환자들이 함께하는 ‘암 희망찾기 캠프’를, 9월과 10월에는 ‘뭉게구름 정기 음악회’를 열었다. 음악회에는 성공회대 아카펠라팀, 이화여대 합창단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또 그림자 인형극을 공연하는 ‘구름극단’을 조직해 정기적으로 소아암 병동을 찾아가고 있다.

김호열 대표는 “올해는 ‘암환자 장애등급 확대’ ‘호스피스 법제화’ 같은 캠페인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박유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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