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깊어가는 ‘총선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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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치르는 총선인 만큼 대선에서 승리한 기세로 보면 유리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게 선거의 역동성이다. 20년 전 노 전 대통령도 과반 확보에 실패해 총선 2년 뒤인 90년 3당 합당이란 선택을 해야 했다.

이 대통령과,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새 정부에 총선 승리, 그것도 과반수 확보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절대 명제다.

직선제로 당선된 한국 대통령들은 모두 취임 초 과반에 모자란 국회 의석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4개월이 지나서야 김종필 총리 인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고 한 것도 과반의 한계를 견디다 못한 비명이었다. 이 대통령 역시 지금 노 정부의 장관 4명을 임대해 쓰고 있는 처지다.

하지만 18대 총선 공천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표정은 어둡다. 통합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반면, ‘친이명박과 친박근혜’로 찢어진 한나라당의 공천 몸살은 여론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당선을 지원한 김영삼 전 대통령조차 7일 상도동 자택을 방문한 한승수 총리에게 “이 대통령이 잘해 주길 바라는데 여러 가지로 걱정하는 국민이 많이 생겼다. 잘할 것이라고 믿지만 요즘은 너무 복잡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이 대통령 주변에선 ‘총선의 딜레마’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대통령은 일절 공천이나 당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게 속사정이다.

◇개혁 공천 절실한데=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개혁 공천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의 공천이 개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비해 한나라당의 공천이 계파 싸움으로 비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며 “대통령은 친이와 친박이란 대결적 개념 자체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문제는 개혁 공천이 쉽지 않은 당내 역학 구조다.

◇박 전 대표와 잘 지내야=‘친박근혜계’라는 한나라당 내부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고민이다.

박 전 대표와의 불화 속에선 건강한 당·청 관계 유지나 순탄한 국정 운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계의 주축인 영남 의원들에게 공천을 보장하자니, 이를 개혁 공천의 포기로 받아들이는 국민 정서가 문제다.

◇자파 그룹 출혈도 불가피=이 대통령 주변에선 박 전 대표의 입장도 살리면서 개혁 공천의 이미지도 심을 수 있는 묘안 찾기에 고민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실적으론 공신 그룹이나 자파 의원들을 희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진영이 다수를 차지하는 영남 지역의 물갈이를 위해선 ‘친이계’의 중진 몇 사람을 제물로 낙천시키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내에선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이 대통령이 정두언 의원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한 것도 심상찮다. 위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한동안 거리를 둬왔던 최측근 정 의원을 다시 불러들여 모종의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선거 개입 시비도 부담=그렇다고 이 대통령이 총선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담스럽다. 선거 중립 논란에 시달릴 수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다음 주 시작되는 지방 업무보고가 총선 승리의 수단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은 총선 개입 오해를 피하려 개별 의원들의 면담 신청도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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