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군부대 부근의 俗物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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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병원장.회사대표 등 우리나라의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브로커에게수백만원씩 주고 가짜신분증을 사들여 美군무원 행세를 하고 다녔다니 창피스럽기 그지없다.이들은 가짜신분증을 이용해 골프장.레스토랑 등 미군전용 위락시설을 이용하거나 면세품 을 사들이고 자녀를 미군 영내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특히 한 이름있는 병원장 형제는 2만달러(한화 1천5백여만원)를 주고 가짜 신분증 두 장을 사들인 후 부대 안 면세점에서TV.세탁기.냉장고 등 고급 가전제품을 대량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미군부대내의 면세품값은 시중의 30%쯤밖 에 안된다니 이 정도면 바로 보따리 밀수꾼 노릇을 해온 셈이어서 한편으로는가엾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사회적으로 넉넉한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갖춘 지도급 인사로서무엇이 부족해 가짜 신분증까지 사들여 미군무원 행세를 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단순히 정신나간 사람들의 허영심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도 뭔가 꺼림칙하다.
한때 신 분을 과시하기 위해 미군부대 출입증을 경쟁적으로 승용차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비뚤어진 미국숭상 풍조와 미제(美製)병이 아직도 이렇게 뿌리 깊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처연할 따름이다.
주한 미군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미8군이 공식발급한 신분증은 1천3백여장이나,가짜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실제 신분증 소지자는 최소한 3~4배가 될 것이라고 한다.실제로 미군전용 클럽이나 식당 등은 대부분 한국사람들로 붐비지만 이들 이 단속에 걸렸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물론 이같은 현상은1차적으로 추한 한국인들과 이를 엄격하게 통제.단속하지 못하는우리 정부당국에 책임이 있다.그러나 이해관계 때문인지 변칙수출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들을 미온적으 로 단속하고 묵인.조장해온미군 당국에도 상당부분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들은 우리나라나 미국 어느 쪽에도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는존재지만 어느 한쪽의 단속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그러므로 두 나라는 서로의 국익보호 차원에서 이들이 완전히 뿌리뽑힐때까지 합동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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