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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폐합 … 인사 태풍 … “어떻게 살아남나” 공직사회 요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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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 출근한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들이 책상과 의자를 옮기며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휴일인 2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평소 같으면 몇몇 당직자나 잡무를 처리하려는 일부 직원만 나왔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200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을 지켰다. 이들 중 상당수는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사무관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지만 조직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 부서 분위기가 워낙 흉흉해 일찌감치 출근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의 한 직원은 “신임 장·차관들이 모두 출근했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 쉴 엄두가 나질 않았다”며 “출근한 다른 직원도 나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공무원 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큰 것은 정부조직 개편으로 ‘공무원 3427명 감축안’이 예고된 점이다. 또 지난달 29일 장·차관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부처별 후속인사가 코앞에 다가와 집에서 쉬기는 마음이 편치 않다. 2~3개 기관이 통합된 거대부처 내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과천 경제부처의 한 팀장은 “인사태풍 속에 칼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고 부서 분위기를 전했다. 공무원들이 너도나도 생존경쟁에 매달리면서 정권교체기 공직기강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떨고 있는 고위공무원=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이 제1차관으로 전격 발탁된 교육과학기술부는 초긴장 상태다. 차관보 등 1급 간부들을 제치고 국장급 인사가 차관으로 승진한 것은 이례적이다. 행시 20~22회 출신 고위공무원들은 행시 24회인 우 국장의 임명 소식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황스러워했다. 행시 20회인 김광조 인적자원정책본부장과 박경재 서울시부교육감(1급)이 지난달 29일 이미 사표를 냈다. 아직 사표를 내지 않은 1급 공무원들도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교육과학기술부는 고위공무원(옛 1~3급) 자리가 중앙부처 중 가장 많은 14자리나 줄게 돼 자리 찾기 경쟁이 어느 부서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지식경제부도 마찬가지다. 예상을 뒤엎고 행시 24회인 임채민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정책조정실장이 차관으로 임명되자 1급 이상 간부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과거 산업자원부 시절 1급 간부는 8명인데 이 중 기술고시 출신과 특채를 제외하면 4명이 임 차관보다 행시 기수 선배이고 1명은 동기다. 이들 대부분이 이번 인사 때 옷을 벗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행시 22회인 최중경·배국환 차관이 임명되면서 행시 선배 또는 동기생 3~4명이 공직을 떠날 가능성이 커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주 일부만 외청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머지는 공직을 떠나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가 통합된 국토해양부 내의 싸움도 만만치 않다. 특히 건교부 출신의 불만이 크다. 공식적으로는 건교부가 해양부를 흡수하는 형식이다. 조직 개편은 건교부쪽 실·국·과장 자리가 많이 줄어드는 쪽으로 진행됐다. “해양과 해운 분야는 줄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진 뒤 건교부 출신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건교부 출신의 50대 고참 과장은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그냥 납작 엎드려 있는 중”이라며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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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3일 김하중 주중 대사가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며 장관 후보자 공석 상태가 일단락되자 뒤이을 인사 태풍과 조직 축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일부에선 현재 290명인 본부 인원 중 80명을 대폭 감축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실 4본부’ 체제였던 조직도 새 정부의 통일부 군살빼기 원칙에 따라 ‘1실 3국’으로 축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팀장은 “이렇게 오그라들면 나도 팀장직에서 빠져야 하는 것 같다”며 “요즘 모이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놓고 다들 한숨만 쉬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업무에서도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이미 대북 업무와 관련된 업무 협조가 통일부에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핵심 간부는 “지난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접촉설이 돌았는데 우리에겐 (외교부에서) 아무런 정보도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서 국무총리실로 파견된 260여 명의 직원들도 지난달 29일자로 전원 원대복귀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친정’ 부서에서 보직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로 돌아간 한 서기관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통합으로 4급 이하가 128명이나 줄어 자리가 없는데 누가 파견 갔다 돌아온 사람까지 챙겨 주겠느냐”고 불안해했다.

◇중·하위직도 우왕좌왕=적지 않은 일반 공무원들은 자신의 거취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중에는 최근 한 달 새 이렇다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장관도 없이 차관부터 임명된 보건복지가족부·환경부·통일부·여성부는 후속인사가 늦어지는 것이 불가피해 직원들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정부 청사 사무실 재배치 계획이 확정돼 적잖은 공무원들은 당장 이번 주부터 짐을 싸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한 사무관은 “장관도 아직 임명되지 않았는데 사무실마저 과천청사에서 서울 도심의 옛 해양부 청사로 옮기라니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허탈해했다.

인사적체의 탈출구였던 해외연수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지식경제부·국민권익위와 같은 통합부처는 인사·홍보 등 중복 부서의 자리 확보를 놓고 출신 부처별로 파워게임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2일 정부 중앙청사에 출근한 한 직원은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공무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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