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글 덕에 공장 준공 20개월 당겨”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신현우 부회장이 동양제철화학이 자체 생산한 폴리실리콘으로 만든 태양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주식시장이 아무리 선행적으로 움직인다 해도 3만~4만원 하던 주가가 40만원까지 오를 때는 부담스러웠지요. (태양광사업이) 제대로 안되면 이민 갈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서울 소공동 동양제철화학 본사에서 만난 신현우(60) 부회장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2006년 6월 태양광사업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이후 회사 주가가 가파르게 뛴 데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덜어냈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태양광사업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의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미국·독일·중국 등에서 2조원대 일감도 따놓은 상태다.

구글 검색으로 공장 벤치마킹

폴리실리콘은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솔라셀(태양전지)의 원재료로 규소를 가수분해해 만든다. 규소 순도를 99.9999999% 이상으로 높이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쉽지 않다. ‘9가 아홉 개 있어야 한다’고 해서 업계에선 ‘나인나인 기술’이라고 부른다. 신 부회장은 “불순물이 10억분의 1 이하여야 한다”며 “제대로 만들면 2달러짜리 규소 1㎏이 100~300달러짜리 ‘노다지’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70~80여 업체가 폴리실리콘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양산에 성공한 곳은 다우코닝 계열의 헴록(미국)을 비롯해 바커(독일), REC(노르웨이), 도쿠야마(일본) 등 7개 사에 불과하다. 양산에 성공하면 연 15%대 성장률에, 40%가 넘는 영업이익률이 보장되지만 그만큼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

동양제철화학이 자체 기술로 이 사업에 도전한 것은 2005년 12월. 전북 군산에 부지를 잡고 기계와 설비를 주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빠졌다. 어떻게 생산라인을 구성할지 막막했다. 선발업체들이 생산라인을 ‘일급비밀’로 정해 출입을 통제하는 탓에 벤치마킹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6년 8월 착공한 군산공장은 이듬해 11월 완공됐다. 30~36개월 걸린다는 건설 기간을 오히려 15개월로 줄인 것이다. 신 부회장은 “인터넷 포털 구글 덕을 톡톡히 봤다”고 귀띔했다. 세계 지형지물을 낱낱이 보여주는 ‘구글 어스’ 서비스를 이용해 경쟁사 공장을 손금 보듯 파악함으로써 공장 레이아웃을 할 수 있었다.

공장 가동 후 100일로 예상했던 고순도 폴리실리콘 시제품 생산 시점도 불과 열흘밖에 안 걸렸다. 신 부회장은 “공정이 비슷한 흄드실리카를 생산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판로에 대한 고민도 쉽게 풀렸다. 2006년부터 태양광사업 관련 해외 콘퍼런스에 참여해 폴리실리콘 생산 계획을 밝혔더니 미국의 선파워와 중국의 트리나솔라 등이 선뜻 물량을 맡겨온 것. “50년 가까이 화학업종에만 매진하면서 ‘DCC(동양제철화학의 영문 약자)는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준 게 큰 도움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동양제철화학은 현재 연 5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양산체제를 갖추느라 분주하다. 2분기 중 양산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양산 시점은 상당히 당겨질 것으로 신 부회장은 내다봤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4000억원을 들인 데 이어 내년까지 7000억원을 더 투자해 연산 1만5000t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세계 공급량(8만t)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신 부회장은 “2010년 세계 5위권에 진입한 뒤 수 년 안에 2위로 도약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윤이 높으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뻔한 이치. 범현대가인 KCC와 현대중공업이 손잡고 폴리실리콘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삼성·LG·한화 등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 부회장은 “태양광 관련 사업은 글로벌 시장이 널려 있는 만큼 국내 업체의 진출을 환영한다”면서도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지 인력 스카우트 등으로 시장을 어지럽히면 정면 대응하겠다”고 못 박았다.

송상 후예라 보수적? “한참 오해”

㈜옥시(현 옥시레킷벤키저) 사장을 지내던 신 부회장이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달라”는 이수영 동양제철화학 회장의 부름을 받은 것은 2005년 8월. 그해 말 이 회장은 신 부회장이 내놓은 ‘태양광 프로젝트’ 신사업 제안서에 서명했다. 그런 지 3년도 채 안 돼 굵직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런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신 부회장은 ‘불광불급(不狂不及)’ 정신이라고 했다. ‘미치지(狂) 않으면 경지에 미치지(及)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군산공장은 전쟁터였습니다. 해 뜰 때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는 것은 예사였고, 주말도 없다시피 했지요. 기자재 담당을 맡았던 한 외국 기술자가 처음엔 ‘미친 사람들’이라고 놀리더니 나중에는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혀를 내두르더라고요.”

1959년 개성 출신의 고(故) 이회림 회장이 창업해 ‘송상(松商) 기업’으로 유명한 동양제철화학은 기업문화가 보수적인 걸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신 부회장은 “오해도 한참 오해”라고 손사래 친다. 그는 “동양제철화학이 왜 독점기업 소리를 듣는지 아느냐”고 반문한 뒤 “남이 하지 않는 사업을 먼저 시작해 자연스레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양광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초기 양산에만 4000억원대 돈이 든다는 보고에 처음엔 고민하던 이수영 회장이 조용히 웃으며 “해 봐라”고 한마디해 결정이 이뤄졌단다. 그는 이 회장이 ‘차·차·차’ 경영 원칙을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기회(CHAnce)를 보면 도전(CHAllenge)하고 기업을 변화(CHAnge)시켜야 한다’는 뜻이란다. 그는 “나만 해도 그동안 실패한 프로젝트가 숱하게 많지만 그래도 회사 잘 다니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이상재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