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이상한 자본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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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상장기업은 신주발행을 통한 증시자금 조달액이 사업규모에 관계없이 조달액이 1년에 3천억원을 넘어선 안된다.회수도 한번만 허용된다.이 규제는 기업측 사정도,증시의 형편도 관계없다.
그래서 기업이 신규투자를 해야할 판인데 1년에 한번이고 최대조달한도도 있으니 대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은 골머리를 썩힐 수밖에없다.주가가 액면의 40배인 20만원이든 2배인 1만원이든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3천억원이라는 절대액만 보면 대단한 규모다.그러나 상장 시가총액 1백50조원을 넘나드는 지금 증시규모에서는 0.2%에 불과하다. 웬만한 대기업의 장기설비자금 조달액으로는 부족하다.상장사인 LG전자는 최근 실시된 기업설명회(IR)에서 올해중 신규 시설투자 예정액만 7천억원이고 삼성전관도 7천2백억원이라고말했다. 국내증시의 이런 규제는 두가지 배경이 있다.첫째는 한정된 증시자금이므로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고루 배분돼야 한다는 주장이고 둘째는 자금조달이 많으면 주식공급이 많아져 주가가 떨어질 것이므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를 막아야 한다 는 논리다.그러나 둘다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근거가 모호한 주장이다. 우선 증시자금을 정부가 배분에 나선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다.원래 자본시장의 자금배분기능은 기업의 시장평가인 주가에 따라이뤄져야 한다.시장가격을 무시하고 그 자리를 정부가 대신한다면이 자체가 벌써 시장기능을 부정하는 것이다.
두번째 신주발행에 의한 물량공급이 증시의 침체를 가져온다는 생각은 단기적인 수급(需給)사정을 과장한 것이다.그렇지 않다.
89년 4월부터 92년 8월까지 1천을 넘던 종합주가지수가 4백60아래까지 떨어졌던 것은 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 끝에 나타난 경기불황 때문이지 주식발행이 많아서가 아니다.좋은 주식은 공급이 많을수록 증시나 증권업계나 투자자를 위해서나 좋은 일이다. 문제는 주가를 도외시한 신주물량 공급에 있다.바로 말하면 주가를 무시하고 정책적으로 주식발행을 조절하는 쓸데없는 규제에 있다는 말이다.
정부는 늘 주가는 자율적인 시장참가자들에 의한 자유경쟁에 의해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주가에 대한 수요와 공급을 별 근거도 없이 뒤에서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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