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市長도 고백한 엉망地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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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지하철 5호선 한강 지하터널과 안양천구간.영등포구청역등세곳에 대한 안전점검을 오스트리아 기술진에 의뢰했더니 지적사항만 2백쪽 분량의 책 한권에 달했다』는 최병렬(崔秉烈)서울시장의 현실「고백」을 들으면서 새삼 기가 막혔다.다 른 곳이라고 해서 사정이 얼마나 다를 것인가.다른 곳들에 대해서도 앞의 세곳처럼 안전점검을 시켜 보고서를 내게 했다면 지적사항이 책 한권분량이 아니라 「전집(全集)」이 되었을 게 틀림없다.
崔시장은『현재 서울등 5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지하철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이는 국내 기술및 인력사정에 비추어 볼때 능력 밖으로서 부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고 한다.공사현장을 체험한 시장의 인식은 그동안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해 온 사실들과도 일치한다.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이 다 마찬가지일 것이고,중소업체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지방은 서울보다 더 위험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언제부터 왜 빚어졌는가를 따지고 있을 겨를도 없다.위험은 바로 우리 눈앞에,바로 우리 발밑에 도사리고 있고 언제 그것이 참담한 재난으로 「폭발」할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崔시장은『현재 상태로는 하루아침에 완벽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무리』라는 체념에 가까운 말을 했다지만 역시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앞장서서 나서야 할 쪽은 당국이다.엄청난 예산이 들고 시일이 걸리더라도 위험을 줄이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대구참사 이전에도 그토록 연달아 대형참사를 경험했지만 행정에도,공사현장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안전을 확보하려면 돈이 들고,그 돈을 마련하려면 예산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또 공사를 서두르지도 말아야 한다.그러나 여전히 예산구조는 보수.관리에는 소홀하고 정부공사부터도 변함없이 조기완공해야 이익이 커지는 체제로 되어 있다.이런 형편이니 공사현장의분위기도 달라질리 없다.어떻게 하든지 「헐값」에 「빨리빨리」 끝내자는 의식이 모두의 머리속에 뿌 리박혀 있다.
崔시장은 당장은 공무원과 국민이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길뿐이라고 했다 한다.이 말 자체는 옳다.그러나 결국은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공사체제를 만들어야만안전수칙은 철저히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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