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英노동당의 公有制 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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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말 열린 전당대회에서 영국(英國)노동당이「생산.분배및 교환수단의 공동소유」를 규정한 당헌 제4조를 폐기하기로 결정한것의 의미는 일부 국내 신문 보도처럼「마르크스주의 청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날의 결정에 따라 지난 78년동안 노동당의 상징과도 같았던이 조항은 새로운 규정,즉「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권력과 富,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공동체의 건설을 지향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이 결정은 압도적 다수인 65.23% 지 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정작 이 결정의 의미는 그 내용에서보다 이러한 결과를 낸 기본 태도와 그것이 이루어진 방식에서 찾아봐야 한다.
지난해 10월 토니 블레어 당수가 당헌 4조의 개폐를 약속한이래 당내에서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더욱이 이 반발은 상당히 명분이 있는 것이었다.
반발세력들은 사회주의의 기본원칙을 교리처럼 맹신하는 일부 舊세력들과 당내의 중요 정치세력인 일부 노조지도자들,그리고 「원칙과 이상주의」에 집착하는 일반 당원들이었다.
명분 면에서 보아 가장 중요한 것은 이중 세번째 부류였다.왜냐하면 노동당은 보수당과는 달리「원칙과 이상주의」를 내세워온 야당이었기 때문이다.
노동당의 상징과도 같은 규정이 폐기된 다음에 남는 黨의 뚜렷한 목적은 무엇인가.이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감상주의적 또는감정적인 집착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1월10일 블레어 당수의 유럽정책에 대한 연설이 있기 바로 전날 노동당 유럽의회의원 32명이 당수의 노선에 정면으로도전해 제4조 폐기에 반대하는 광고를 가디언紙에 실었다.
그러나 블레어는 이들을「유치하고 무능한」사람들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당내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뜻을 관철하는데자신이 있다고 언명하며 이러한 반대에 적극 대처했다.
新우익시대에 이 조항의 폐지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중요한 것은 정서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노동당의 구조적 일부와 같은 조항을 과감히 정면으로 다뤄 폐기하려는 태도와 그것이함축하는 연관된 의미다.
둘째로 이런 변화를 유도한 방식이다.블레어는 이것을 당내 유력층,특히 노조 지도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추진할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적당한」흥정과 타협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쉬운 방식을 택하지 않고 지난 3개월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3만명 이상의 당원을 상대로 강연했다.그 결과 이번 당대회 결정도 일반당원층에서 압도적 지지가 나온 것이다. 블레어는 이것을「新노동당의 탄생」이라고까지 불렀다.어쨌든이것은 그의 지도역량을 과시하는 것만큼 노동당 내부 정치에 큰변화를 시사해주는 것이다.
노동당은 정권을 잃은 16년만에 인기에 있어서 보수당을 크게앞지르고 있다.올해초에 자그마치 39%나 앞선 것으로 시작해 어떤 때는 인기도가 보수당의 3배에 달하기도 했다.노동당으로선집권가능성에 상응하는 개혁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도된다.블레어로선 이번 승리로 내후년 혹은 그 이전에 집권할 수있는 가능성을 더욱 굳힌 셈이다.
그러나 블레어와 노동당의 앞날이 모두 밝은 것만은 아니다.비록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을지라도 제4조 폐기 이후 노동당의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당을「근대화」하고 중산층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여전히 공공서비스의 질과 양을 개선할 수 있겠는가.「신노동당」은 영국의 미래에 관해 그렇게 뚜렷한 비전이 있는가.
노동당과 블레어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행동으로 답변해야 할시점에 서 있다.
〈慶熙大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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