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망명자의 눈으로 본 격동! 한국 현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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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지명관 지음, 김경희 옮김, 창비, 2만8000원

일본의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는 1973년부터 88년까지 무려 15년 동안이나 ‘TK생(生)’이란 익명의 칼럼이 연재됐다. 칼럼 제목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당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세계에 알리는 핵심 창구였다. ‘TK생’의 실명이 밝혀진 것은 칼럼이 끝난 해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난 2003년이다.

‘TK생’이 직접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시 또 15년의 시간이 흘러 그가 세카이 칼럼과 같은 제목의 새 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지명관(84) 한림대 석좌교수다. 그는 목숨을 걸고 칼럼을 집필하던 시절에 비해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진 요즘을 안타까워했다.

‘TK생’이 아닌 지명관 교수는 이번 책에서 세카이 칼럼을 해설하는 형식으로 그 뜨거웠고 긴박했던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재현했다.

세카이 연재물을 중심에 놓고 당시 한국과 일본의 언론 보도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유신독재 반대 투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이 얼마나 숨가빴던가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저자는 특히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일본 언론의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 언론이 침묵하던 시절, 일본 언론이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서 이처럼 역사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세카이 칼럼은 ‘TK생’ 혼자 해낸 것이 아니며 한일 국경을 넘나든 수많은 이들의 연대에 의해 탄생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일 시민사회 간 형성된 그 연대의 기억이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했다.

덕성여대 교수와 진보 성향 잡지 ‘사상계’ 주간을 지내던 지 교수가 72년 말 일본에 간 것은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조국의 현실은 그를 다시 민주화운동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새 책의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일생의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것 같아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일본어판도 이와나미서점에서 곧 나온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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