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강준만著 "김대중 죽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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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치가 똥물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을 혐오할 권리를 우리는 가져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혐오」가 경계돼야 하는 것은그것이 필히 양비론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 잘난 양비론은 세상살이를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이끌기 위해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일을 원천봉쇄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양비론을 조금 더 이해하고 판단해보면 「다 같다」는 양비론조차 심판하는 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저자 말에 따르면 똑같이 누구를 욕할 때 우리는 그들 이 결코 똑같은 조건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미 어느 쪽 편을 든 것이 된다.92년 대선을 예로 들면 어마어마한 행정과 언로지원등에서 이미 두 후보는 「다 같을」수 없었던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은 너무나 강력해 차마 회피할 수없는 문제와 질문을 한국사회를 향해 내던지고 있다.
때문에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책장을 덮자마자 길거리로 뛰쳐나가 아무나 붙잡고 논전을 벌이고 싶은 충동에 빠질 것이다.하지만 고작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전을 하는데 이 책을 쓴다면 문제의 저서를 1회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된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기를 응시하는데 쓸때 장기적인 부가가치를 높이게 된다.특히 경상도 사람에게 이 책은 상대적 입장에서 영.호남간의 지역감정을 들여다 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이제나는 나를 들여다 보련다.
서른넷이 되도록 단 한번도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소중한 자랑으로 삼아왔다.그러나 내가 경상도 아닌 전라도에서 태어났더라도 그랬을까.한번도 출신지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나는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평생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일관된 염세주의가 나를 정치 무관심자로 이끌었다고 당당히 외쳐왔으나,대선이 끝나고 나서 호남인들은 「호남대통령을 만들려면 아기나 열심히 낳는 수밖에 없다」는 한탄에 빠졌다던 이 책의 어느 대 목은 내 당당한 염세주의마저 슬프게 한다.까닭인즉은 92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결정한 것은 영남과 호남의 인구차이였다는 주장을 부인할 더 나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좋지만 김대중(金大中)은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고 고급스럽게,아주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심한 전제의 오류를 지니고 있지만 지역감정이 잔존하는 한 설득력을 갖는다.이해하고판단하려는 수고를 피해간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며 실제로 불편부당하지 않음으로써 범죄적인 양비론을 근절하고 좀더 질높고 본질적인 정치토론을 끌어내기 위해 저자는 정치논평을 쓰는 필자들과언론매체들이 지지정당을 분명히 하는 「정치평론의 실명제」를 제안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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