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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꽃마다 「꽃말」이 있듯이 보석에도 저마다 「보석말」이 있다.
자수정의 보석말은 「성실」과 「마음의 평화」다.
결혼생활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 성실이다.
성실한 아내,성실한 남편이 있어야 비로소 집안엔 평화로움이 넘치는 법이다.「성실」과 「마음의 평화」의 두가지 보석말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은 그럴싸했다.
결혼하는 딸 내외에게 자수정 짝반지를 선물하리라는 길례의 속셈에는 간절한 것이 있었다.
「마음의 평화」는 아내에게 있어 어쩌면 으뜸가는 정복(淨福)인지 모른다.내내 불안정한 마음 언저리에 살아온 길례로서는 딸에겐 이런 화덕같은 심정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성실해라.그래야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자수정 알을 산 것도 그런 타이름을 스스로 자기에게 주고 싶었던 탓이다.
그러나 장차 마음의 평화가 누구보다 간절할 사람은 종손 아기외할머니일 것이다.쓰린 가슴으로 키워온 손자를 떠나 보내는 그속이 오죽하랴 싶었다.
-자수정 반지를 만들어 종손 아기 외할머니에게 보내야겠다.
『자수정은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것이 최상품이지.경주는 원래 오색 수정으로 유명했다.』 남편이 보랏빛 알을 손끝으로 집어서 전등 불빛에 비추며 말했다.
『이렇게 고장마다 명산이 있어야 지방경제도 활성화될텐데….』우리나라 각지엔 일찍이 명산이 많았다.
조선조 정조(正祖)때의 여류 실학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동국팔도 소산」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다.
경주의 오색 수정,부산의 마노석(瑪瑙石),동래의 놋그릇,통영의 자개박이 그릇,전주의 종이와 화각(畵刻)그릇,담양의 대나무상자,나주의 수박,순창의 고추장,한산의 모시,당진의 소금,충주의 개와 청명주,청주의 초정술,수원의 약과,용인 의 오이김치,평택의 우황,철원의 송이,백령도의 매,제주의 산호 진주 귤과 말,대동강의 동(冬)숭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즐겁다.
이런 명산품의 태반이 자취를 거뒀다.
왜일까.
애써 개발해도 시원찮은 것을 있는 것마저 외면해온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일본은 명산품의 나라지.전국 곳곳에 명산품 없는 고장이 없어.술,과자,밑반찬 나부랭이까지….그게 참 부럽더군.』 『이 자수정으로 반지 만들어 드릴테니 일본 가시거든 종손 아기 외할머니에게 전해 올리세요.얼마나 서운해 하시겠어요.…자수정의 보석말이 「마음의 평화」래요.』 길례를 건너다보고 남편이 의외의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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