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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위험수위 폭력둔감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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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Natural born killer- s』(타고난 살인자들). 요즘 상영중인 미국 올리버 스톤감독의 「초강력 살인」영화다.스톤은 『플래툰』에서 베트남전의 비인간성을,『JFK』에서 케네디 암살의 배후 폭력구조를 고발한 감독이다.그런 그가 살부모(殺父母)까지 난무하는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아마도 폭력 고발이라는 자신의 영화주제에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 폭력의 포로가되어 표현의 한계를 넘어섰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지금 지구촌에는 「타고난 살인자들」의 광란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다.일본 오움진리교의 독가스 테러,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폭탄 테러,그리고 르완다에서의 학살만행소식을 접한누군가가 이를 두고 경박하게도「살인극의 연속상영 」을 보는듯 하다고 했다.
이 끔찍한 사건 앞에서 연속상영 운운한 표현이 튀어나올 만큼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지 않는한 그것은 영화속의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무수히 쏟아져 들어온 할리우드의 폭력영화에 장기간 노출되다보니 어느 새 실제 폭력에무감각해진 것이다.
폭력영상물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표적 상품이라고 한다.
말초 자극에 호소하는 그것의 효과는 마약과 같아 고단위 처방의악순환이 계속돼야 상품가치를 지니게된다.
청소년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국교생들의 장기 베스트셀러인 일본만화시리즈 『드래곤 볼』 최근호인 제40권에는 지구를 거의 전멸시킨 마귀가 인간을 과자로 만들어 먹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구세주 이름은 놀랍게도 「미스터 사 탄」으로 되어있다.그러면서 책 뒷면에 이 책만이 일본에서 저작권을 산 진짜이니 유사품에 속지말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았다.가치전복도 이쯤되면 병일 수 밖에 없다.
컴퓨터 게임은 어떤가.청소년들은 밀실에 앉아 이른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속에서 과거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실감나는 폭력을 즐기고 있다.
사전을 보면 외국에서 들어온 문물을 박래품(舶來品)이라고 한다.그러나 지금 상황은 배를 타고 오듯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외국의 폭력물은 크루즈미사일처럼 우리 의식의 레이더를 피해 정서를 파괴하고 있다.그것은 또한 독가스처럼 은밀히 그러나 전면적으로 우리의 정서를 오염시키고 있다.
李憲益〈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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