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은 돈으로 새 둥지 틀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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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의 창당자금 일부가 대기업에서 받은 불법자금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이던 여택수씨가 롯데그룹에서 3억원을 받아 이 가운데 2억원을 안희정씨를 통해 전달한 단서가 검찰에 의해 포착됐다고 한다. 열린우리당도 지난해 9월 김원기 고문이 安씨를 통해 받은 2억원을 빌려 당사 임대보증금의 일부로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입만 열면 깨끗한 정치를 부르짖으면서 도덕적 우위를 내세워온 열린우리당으로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돈이 창당자금으로 들어가던 날은 민주당이 분당된 직후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탈당하기 직전이다. 대통령 당선축하금 성격의 자금이 창당자금으로 사용된 셈이니 盧대통령도 이번 사건의 회오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도 열린우리당은 의원들이 2000만원씩 대출받은 돈까지 보태가면서 투명한 돈으로 창당했다고 해왔다. 개혁을 명분으로 민주당을 분당시킨 정치집단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열린우리당은 대국민 사과와 반성의 의미로 2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서울 여의도 당사를 이전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으로 또 다른 비리를 적당히 은폐하고 당의 이미지를 유지.관리하려 들면 안 될 것이다. 내내 깨끗한 척하다가 문제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이를 인정하는 식으로는 어떤 쇄신도 기대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지난해 11월 창당자금이 14억여원이라고 발표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불법자금 추가 유입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상황에선 스스로 솔직하게 창당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최선이다. 눈가림식 이벤트로 이 국면을 넘기려 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창당자금이 盧대통령 당선축하금 성격이 짙은 만큼 검찰은 이 부분도 수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