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번 두른 오바마 … 또 ‘뿌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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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2006년 8월 27일 소말리아와 인접한 케냐 북동부 와지르 지역을 방문, 부족 원로들이 선물한 소말리아 전통 의상을 입어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음달 4일 ‘미니 수퍼화요일’을 앞두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2년 전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을 때 현지 전통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흑색 선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오바마 진영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쪽에서 이 사진을 유포시켰다며 맹비난을 퍼붓자, 힐러리 진영은 오히려 오바마 측이 불화를 조장한다며 역공에 나섰다.

문제의 사진은 오바마가 2006년 8월 아프리카 5개국 순방 시 케냐의 와지르 지방에 갔다가 부족 원로들이 선물한 흰색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소말리아식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인터넷 뉴스매체 ‘드러지 리포트’는 25일 이 사진을 게재한 뒤 출처를 힐러리 캠프 관계자라고 밝혔다.

오바마는 힐러리 측이 자신의 아프리카 혈통을 강조하는 사진을 악용한 데 대해 “이런 식의 정치 행태는 유권자들을 슬프게 만들 것”이라고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텍사스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뿐 아니라 누구든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전통 의상을 입어 보라는 부탁을 받기 마련”이라며 “힐러리가 미국과 세계 각국 간 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연설한 바로 당일 그쪽 캠프에서 이런 사진을 흑색 선전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힐러리 캠프의 책임자인 매기 윌리엄스는 “ 사진이 불화를 조장할 것이라 여기는 오바마 측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면서 “미국이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로부터 유권자의 관심을 돌리려는 뻔한 시도에 불과하다”고 반격했다. 또 힐러리 측 대변인인 하워드 울프슨은 “이 사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유포설을 부인했다.

케냐인 아버지를 둔 오바마의 뿌리와 관련해 네거티브 공세가 펼쳐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앞두고 힐러리 캠프의 자원봉사자 두 명이 오바마가 이슬람 교도라는 허위 사실을 담은 e-메일을 유포하다 발각됐었다.

그러나 거세지는 네거티브 공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지지율은 상승일로를 달리고 있다. 26일 발표된 뉴욕 타임스-CBS 여론조사 결과 오바마(54%)는 처음으로 전국 지지도에서 힐러리(38%)를 앞섰다. 전날 공개된 유에스에이 투데이-갤럽 조사에서도 오바마는 51% 대 39%로 힐러리에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미니 수퍼화요일’에 경선을 치르는 텍사스주에서도 오바마는 힐러리를 따라잡았다. 텍사스주는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이 많아 힐러리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25일 발표된 CNN 조사 결과 오바마는 텍사스주에서 50%의 지지율로 힐러리(46%)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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