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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댐 ‘도지사 싸움’ 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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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탄강댐 건설을 둘러싼 경기도 지자체와 강원도 지자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법원이 ‘당초 계획의 절반 크기로 지으라’는 조정안을 내놓았지만 양측은 이를 거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와 강원도 도지사까지 직접 재판부에 편지를 보내 각각 댐 건설의 당위성과 무용론을 주장하는 등 신경전을 펴고 있다.

갈등은 2006년 12월 건교부가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의 홍수 조절을 위해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한탄강에 다목적댐을 짓겠다는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본격화됐다. 상류 지역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강원도 철원 등 인근 지역 주민 150여 명은 안전성과 환경 문제 등을 지적하며 지난해 3월 건설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댐 건설 취소 소송을 내며 맞섰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5일 댐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조정 권고했다.

재판부는 “총 저수용량을 원래 고시된 ‘2억7000만㎥’에서 ‘1억3000만㎥’ 정도로 축소하라”는 안을 내놨으나 건교부와 원고 측(주민) 모두 이의를 신청했다. 결국 판결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김문수 경기지사는 22일 판결을 앞둔 서울행정법원에 “한탄강댐을 원안대로 건설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건의문을 보냈다. 김 지사는 건의문에서 “한탄강댐 건설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검증과 확인을 거쳐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사항”이라며 “어떠한 가치도 도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으며 임진강 유역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한탄강댐은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김진선 강원도지사도 조정 권고가 나오기 전인 지난달 7일 재판부에 댐 건설에 반대하는 건의문을 보냈었다. 그는 “댐이 건설되면 상류 지역의 지체와 역류로 철원군민들이 침수 피해를 볼 수 있으며, 안개 발생으로 인한 벼 수확량 감소 등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와 강원도 관련 지역 주민들의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산읍 이장단협의회 등 경기도 파주 지역 6개 사회단체 회원들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댐 규모 축소는 그동안 수해로 고통받아온 파주 지역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댐 건설을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댐 건설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연천·포천 지역 주민들과 연대해 대규모 집회 등 물리적 대응도 강구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포천·연천 주민들로 구성된 ‘한탄강댐 정상적 추진을 위한 조정 권고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의 이수인(48) 위원장도 “한탄강댐 건설사업이 극단적 지역이기주의에 의해 또다시 표류할 경우 연천·포천 지역 주민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강원도 철원 주민들은 댐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탄강댐 건설 반대 철원군 투쟁위원회는 “한탄강댐 건설사업은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한탄강을 파괴하는 만큼 사법부의 판단 이전에 백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한탄강댐은 위치와 규모의 한계로 홍수 조절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지속 가능한 발전과 후대에 물려줄 아름다운 한탄강을 위해 어떤 댐도 건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양측 주민들의 팽팽한 대립 때문에 소송이 대법원까지 이어질 게 뻔해 댐 건설 갈등은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찬호·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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