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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만은 꼭!] "기발·황당한 내 소설 이번엔 현실성 가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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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36.사진)씨는 기이하거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즐겨 써왔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죽음으로 안내하는 자살 보조원이 등장하는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벼락맞은 사람들의 모임을 다룬 단편 '피뢰침' 등이 그런 이야기들이다.

김씨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이후 5년 만에 펴낸 세번째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에서도 '황당한'이야기가 등장한다.

'오빠가…'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던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는 사람의 심장 근처에서 갑자기, 저절로 불이 나 내부 장기를 태운 후 결국 몸 전체를 태워 사망에 이르게 하는 '자연 발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보물선'에는 한반도 동해 상공을 날던 러시아 수송기가 떨어뜨린 황소 한 마리를 맞고 침몰해 버린 일본 꽁치 어선 이야기를 끼워넣었다.

그러나 기이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오빠가…'에 실린 작품들은 김씨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적이다.

자연발화가 소설의 이야기 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림자를…'은 대학시절 연애 상대가 신문에 나와 대학생활은 그저 암울했다고 말한 대목을 읽고 마음이 살짝 흔들리고, 끊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주변의 말에 신문 절독 신청을 꺼리는 소심하고 섬세한 소설가에 관한 이야기다.

어린시절 자신의 그림자에 언뜻 언뜻 놀라곤 했던 소설가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그림자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의 그림자와 뒤의 그림자는 같은 그림자가 아니다. 어쨌든 그림자는 광원(光源)에 대상이 비춰져야 생기는 것이다. 고교시절 소설가는 타고난 풍모로 숱한 여학생들을 설레게 했지만 가톨릭 신부의 길을 택한 바오로와 아름답고 똑똑했던 미경, 두 친구의 꿈같은 사랑을 선망의 시선으로 곁에서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한다. 그들처럼 누군가의 영혼에 드리울 무언가(그림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소설가에게 선선히 그림자가 허락됐다면 '그림자를…'은 재미없었을 것이다.

김씨는 "'그림자를…'을 쓰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림자를…'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베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의 직업 소설가들을 위한 헌사(獻辭)로도 읽힌다.

아버지를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패륜 아들이 등장하는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나 큰집으로 옮겨가는 이사를 희망적인 이벤트가 아닌 재난으로 묘사한 '이사', 운명적 사랑을 믿는 여소설가에게 발목 잡힌 바람둥이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다룬 '너의 의미' 역시 개연성의 울타리 내에 있다.

'보물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서해에 가라앉은 일본 보물선의 인양을 둘러싼 증시 작전이라는 실제 사건을 동원했지만 오히려 재미 전달만을 위해 쓰여진 100% 허구라는 느낌을 준다. 흥미진진하다.

"현실로의 방향 전환이냐"고 묻자 김씨는 "이전 소설들이 한쪽으로 질주하기만 했다면 이번 소설집의 작품들은 좌고우면하는 여러 개의 시선.목소리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며 변화를 인정했다.

글=신준봉,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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