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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직 대통령’ 시민생활 첫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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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5일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로 향하는 KTX열차 안에서 “새 정부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5일 귀향했다.

5년간의 대통령 생활을 마친 그는 평범한 시민의 신분으로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이날 오전 0시 대통령의 권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넘긴 노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쯤 대통령 전용 차량을 타고 청와대를 나섰다. 비서실 직원들은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치며 환송했다. 청와대 정문을 나서기 전 1분가량 차 문을 열고 나와 손을 흔든 그는 “큰 과오 없이 지난 5년을 보냈다”고 말한 뒤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서울역에는 노사모 회원과 고교 동문, 조선족 교회 신자 등 700여 명이 노란 풍선을 들고 귀향 길을 환송했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 문재인 전 비서실장, 이정우 전 정책실장 등 전·현직 정부직 인사와 청와대 비서관, 지인 대표 등 160여 명이 봉하마을로 가는 길을 함께했다. 열차가 출발한 뒤 노 전 대통령은 기자들이 탄 열차 칸을 찾아와 10여 분간 즉석 간담회를 했다. 웃음을 띤 모습이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가는 소감이 어떤가.

“집사람과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좀 섭섭하다.”

-고향으로 내려가면 뭘 할 건가.

“집과 마당 가꾸는 일이 제일 바쁜 일이 될 것 같다. 큰 포부가 없어 ‘무엇을 제일 하고 싶다’ 이런 게 잘 없다. 홈페이지를 다듬어 사람들 얘기 듣고, 하고 싶은 얘기 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현실적인 쟁점과는 부닥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잘하지 않겠나. 특별히 잘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스스로 비전과 전략을 갖고 창조적인 정책을 해 나갔으면 한다. 얼마 전까지 참여정부와의 차별화를 계속 강조했는데 얼마 안 가 밑천이 떨어진다.”

-시민으로 돌아온 첫날인데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좀 즐기고 싶다. 무책임한 생활을 즐겨 보는 것이다. 여유를 즐기는 걸 제일 하고 싶다.”

밀양역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밀양시에서 마련한 환영행사에 잠시 참석했다. 그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니 밀양도 고향으로 삼겠다”며 “고향인 경남 사람들이 저 때문에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을까 고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엄용수 밀양시장을 가리키며 “정치인 노무현 종자도 길게 보면 괜찮다. 종자 씨 말리지 말고 계속 사랑해 달라”고 웃으며 당부했다.

밀양역에서 승용차 편으로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주민과 전국에서 모인 지지자 1만여 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고무된 그는 예정된 연설시간 20여 분을 훌쩍 넘긴 50여 분 동안 귀향 연설을 했다. 그는 “(경제성장률) 6%는 못 했지만, 정권을 넘겨줄 때 오르막 경제를 넘겨준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자신의 경제 실정론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그러면서 “모든 정부가 마지막 시기에 경제 그래프가 급경사를 그렸지만, 참여정부를 내줄 때는 (경제지표) 곡선은 ‘꼴아박지’ 않았다. 상승곡선을 그리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만 미국이 사고(서브프라임 사태)를 쳐서 오르막은 안 되고 평평하게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얼마나 골치 아팠는지 아시죠”라고 반문한 뒤 “골치 아픈 것이 전혀 없기야 하겠느냐만은 제가 넘겨준 것은 없다. 미국이 사고 친 것밖에는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내가 보기에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있다”며 함께 봉하로 내려온 유시민 의원을 단상으로 불러와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연설을 끝내며 그는 “이야, 기분 좋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환영행사를 끝내고 사저에 들어간 노 전 대통령은 귀향 후 첫 저녁식사를 형 건평씨 내외 등 가족과 함께했다. 식사 후 마을 광장으로 다시 나온 그는 노사모 회원들이 마련한 환영행사에 잠시 참석했다. 노사모 회원들은 1000원씩 모아 제작한 반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새겨진 서각 작품, 대형 삼겹살, 조끼와 숄을 전달했다. 선물받은 숄을 걸친 노 전 대통령은 무대 좌우를 오가며 가벼운 춤동작을 보이며 흥겨워했다. 노사모 회원들이 노래를 권했지만 “다음에 연습을 많이 한 뒤 하겠다”며 사양했다.

무대 위 비보이 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는 자리를 빠져나와 사저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혼잣말처럼 “아따, 참 자유롭지 못하네”라고 말했다. 일반 시민으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의 첫날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김해=권호 기자, 김기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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