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脫核의 마지막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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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정치지도자,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좌우하는 리더들의 양식은 믿을만한 것인가.
『희망의 시대』『新인간』등의 저서를 남긴 영국작가 찰스 스노(1905~1980)卿의 이 점에 대한 통찰은 날카롭다.
『현대 공업사회의 가장 기묘한 특징중 하나는 극히 중대한 결정이 「한줌」의 인간에 의해 은밀히 이루어진다는 점이다.그리고그 결정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 혹은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가 직접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新인간』) 가장 좋은 예가 히로시마(廣島) 원폭(原爆)투하 결정이었다.
원폭에 대한 美대통령 트루먼의 인식은 단순했다.획기적으로 뛰어난 성능을 가진 군사병기라는 정도였다.소수 과학자들의 충고를무시한 자신의 결정으로 인류가 핵의 공포를 모르고 살던 「무핵(無核)시대」(non nuclear age)에서 핵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핵시대」(nuclear age)로 진입하게된다는데 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결국 그가 연 것은판도라의 상자였고,거기서 튀어나온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었다. 핵시대 진입 50주년을 맞아 때마침 뉴욕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효력 연장기한을 정하기 위한 1백78개국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핵과점(核寡占)체제의 영속(永續)을 바라는미국등 5대 핵보유국은 절대 함부로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자신들의 양식과 이성을 믿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테러집단이나 독재자 손으로의 무분별한 핵확산을 막는 체제로서 NPT연장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異見)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핵보유국을 이끌어가는 「한줌」 리더들의 양식과 이성을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확실한 근거를 가질 수 없는 한 우리는 핵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모든 비핵국들이 일치단결해 이번 회의를 핵보유국들로부터 궁극적인 전면 핵폐기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핵시대」를 종식시키고,「탈핵(脫核)시대」(post nuclear age) 로 가는 확실한 이정표를 마련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북한핵문제라는 특수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비핵국의 일원으로서 이 점에 대해 양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裵 明 福〈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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