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해지려면 목 놓아 울어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즈음, 영국의 우울증 환자가 반으로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일생과 사고 현장이 방송되면서, 그녀의 장례식이 거행되면서 영국인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우울증을 호소하며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다이애나 효과(Diana Effect)’ ‘다이애나 베니핏(Diana Benefit)’ ‘다이애나 신드롬(Diana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원인으로 시작된 눈물이 개개인의 감성 밑바닥까지 훑고 가면서 가슴속 깊이 쌓였던 스트레스와 분노, 아픔들이 함께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다.나를 위해 울든, 남을 위해 울든, 무엇 때문에 울든 시작점은 달라도 눈물로 인해 인간의 마음이 거쳐 가는 간이역과 종착점은 동일하다. 개운함→행복→건강.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이 2003년 발표한 산문집의 제목이다. ‘눈물은 왜 짠가?’ 생리학적으로 접근하면 누액(淚液)이라 불리는 눈물은 98.5%가 물이고 나머지는 염분·칼륨·알부민·글로불린 등의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 눈물이 짠 이유는 눈물 속에 포함된 나트륨 성분 때문인데, 이 눈물의 짜기가 눈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기쁨 또는 슬픔으로 인한 눈물의 짜기는 비슷하지만, 분노의 눈물은 더 짜다는 것. 분노는 자율신경의 교감신경이 흥분돼 나트륨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감정적 눈물의 화학적 구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의 생화학자 빌 프레이는 생물학적 기준에서 눈물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눈동자 표면을 촉촉하게 적셔 윤활유 역할을 하는 ‘지속적인 눈물’이다. 말하자면 이 눈물은 눈동자를 깜박일 때마다 소량 배출돼 눈동자 표면에 골고루 퍼져 외부에서 침입한 박테리아와 세균 등을 세척해준다.

둘째 ‘자극에 의한 눈물’은 양파를 깔 때 흘리는 눈물처럼 외부 자극에 의해 생성된다. 양파가 내뿜는 황산 등이 눈동자를 자극하면 눈은 이 자극적인 물질을 희석시키기 위해 자동으로 눈물을 흘리게 한다. 셋째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감정적인 눈물’이다. 강력한 감정이 불러오는 이 눈물에는 고단백질이 함유돼 있다고 빌 프레이는 설명한다. 그래서 이것이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겨나는 좋지 않은 화학물질(예를 들어 프로락틴 같은)들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다.

영화 ‘접속’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

“전 눈물이 안 나요.” 지금의 영화배우 전도연을 탄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 ‘접속’ 중 한 대사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병명은 ‘안구건조증’.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그녀의 가슴앓이가 그녀의 삶을 지치고 우울하게 만드는 더 심각한 ‘병’이었음을. 그리하여 그녀는 언제부턴가 고민의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게 됐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환하게 웃는다(예의 그 콧잔등 주름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이처럼 관객이 만족스러워하는 ‘해피엔딩’ 드라마에는 실상 눈물이 먼저 등장한다.

웃기 위해 울어야 한다? 최근 눈물치료책 『울어야 삽니다』를 출간한 암 전문의 이병욱 박사는 “가장 정직하게 눈물을 흘리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토해내듯 우십시오”라고 말한다. 암 전문의로 많은 암환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과 치유법을 소개한 『암 치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암을 손님처럼 대접하라』 등의 베스트셀러를 내면서 그가 최종 터득한 것은 바로 ‘눈물 치료법’이라고 한다.

가슴 속에 맺힌 슬픔과 한을 눈물에 담아 펑펑 쏟아내야 몸 안의 독소를 뽑아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분노·화·미움·슬픔처럼 눈물로 덜어내야 하는 일들을 참고 외면할 때 가슴속에 쌓인 감정들은 독소가 되고 몸의 생기마저 빼앗아간다고 그는 말한다. “웃음을 파도에 비유한다면, 눈물은 해일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상처들을 완전히 끌어올려 쓸어내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생기고, 이것은 곧 몸의 병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면 면역 글로불린G 같은 항체가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암세포를 억제하거나 감소하게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항체는 독소를 중화시키고, 병원균이 인체 세포에 접합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며, 소화기계도 원활하게 움직여 소화력이 크게 늘어난다. 또 목 놓아 울게 되면 복근과 장이 운동을 시작해 그 기능도 좋아진다.

요가 수련법의 하나인 ‘울기 프로그램’은 이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1970년에 존 레넌이 프라이멀 요법(Primal Therapy, 인간 감정의 초기 단계인 유아기의 고통을 다시 경험하게 함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받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말하자면 평화와 자유를 노래했던 존 레넌도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정서를 순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각종 개인 블로그와 사이트를 통해 눈물 테라피(Tear Therapy)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건강을 테마로 다양한 미용 정보를 안내하는 사이트 ‘아이팟 살롱’에서는 눈물을 테마로 한 연재칼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칼럼의 요지는 울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결국 ‘피부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류머티즘 권위자인 요시노 신이치 교수는 눈물 요법을 치료에 적극 적용하고 있고, 일본 도호대 의대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뇌파·안구운동·심전도의 변화를 통해 눈물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밝혀내 화제가 됐다.

어떻게 울어야 ‘잘’ 우는 걸까?

“TV 드라마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납니다.” “슬픈 노래, 예를 들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크게 틀어 놓고 웁니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절로 눈물이 나옵니다.” “친정 엄마·아빠만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납니다.”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듣다 보면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언제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물었더니 주위에서 이런 대답들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마음 놓고 ‘펑펑’ 울지는 못했다고 한다. ‘역시 아줌마야’라는 남편의 놀림이 듣기 싫어서, 나 스스로 너무 처량해지는 건 아닌가 두려워서, 자기 연민에 빠지는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 가증스러운 악어의 눈물이라는 주위의 시선을 피하고 싶어서…. 결국 우리는 어른이 되고서는 마음껏 크게 실컷 울어본 적이 없다.

이병욱 박사는 ‘어떻게 울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한다. “횡경막이 떨릴 정도로 크게, 오래 우세요.” 상대방을 향한 분노의 표시로 혹은 자기 연민에 빠져 우는 것도 좋고, 누군가를 대상으로 떠올리며 또는 특정한 이미지를 보면서 울어도 좋고, 특히 눈물을 금기시해 왔던 남자일수록 더 많이 크게 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강철교 밑에서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주인공이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우는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 뻔~하지만 되풀이되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그리고 그들이 은근히 부러웠던 이유도 알겠다. 삶의 길목에서 순간순간 힘들어질 때면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어디 한적한 바닷가에서 실컷 울다 왔으면 좋겠다.” 말로만 말고 이젠 해보자.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사진 중앙포토, 도움말 이병욱 (대암 클리닉 원장,『암 치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암을 손님처럼 대접하라』저자이며 최근 눈물치료책 『울어야 삽니다』를 출간했다), 일러스트 김미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