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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랑방>한국소설 반세기의 겉과 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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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한 문예지로부터「해방 50년의 한국소설」에 관한 기획특집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1945년 이후 지금까지 발표된 우리 소설 가운데서 문학사적으로,문예미학적으로 수작(秀作)이라 기억될만한 작품을 장편과 중.단편으로 나누어 10편씩 선정해 달라는 것이었다.활동중인 평론가 대다수가 참여할 예정이라는 것이며 반세기동안 발표된 주요 소설 1천2백여편의 목록도 보내왔다.
작품목록을 일별할 필요도 없이 지난 50년간 한국소설의 넓이와 깊이가 과연 이 정도였던가 스스로 놀랄 정도로 얼른 떠오르는 작가들의 면모나 작품의 제목들은 극히 한정돼 나타났다.우선떠오르는 작가들은 해방전부터 활동하던 김동리(金 東里)황순원(黃順元)안수길(安壽吉)등 몇몇,전후(戰後)세대의 작가로 박경리(朴景利)최인훈(崔仁勳)등 몇몇,60년대의 작가로 김승옥(金承鈺)이청준(李淸俊)등 몇몇,그리고 70년대이후 연작.대하.세태소설로 성가를 높인 박완서(朴婉緖)황 석영(黃晳暎)이문구(李文求)김원일(金源一)김주영(金周榮)조정래(趙廷來)이문열(李文烈)등 몇몇에 불과했다.물론 작품부터 먼저 꼽아봤다 해도 그 대부분이 이들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반세기 5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특히 우리 현대문학으로서는 그 전통이 일천(日淺)한데다 일제(日帝)의 침탈로 36년간 언어마저 빼앗겼던 탓에 새로운 50년의 의미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 기간중 한국문학.한국 소설의 성과를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다른 평론가들의 견해도 비슷했다.한 평론가는『문예미학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나도향(羅稻香)이효석(李孝石)김유정(金裕貞)등의 해방전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들이 과연몇편이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또다른 평론가는 『우리문학,특히 소설이 문학예술로서의 정통성을 갈수록 상실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짙다.순수문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정체불명의 소설들이 소설독자층을 사로잡고 있지 않은가』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것은 물론 한국문학의 내부적인 문제들일 따름이지만 세계문학과 관련된 측면에서는 더욱 심각하다.반세기의 절반쯤이 지난 70년대초 스웨덴 한림원(翰林院)이 한국 펜클럽에 노벨문학상 후보추천을 의뢰해왔을 때 거론된 몇몇 작품은 번역조 차 되지 않아 제외됐고,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이 재미작가 김은국(金恩國)의 『순교자』였다.
한국태생의 작가가 한국을 무대로 쓴 소설일 뿐「한국소설」은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이것이 그무렵 세계속 한국문학의 실상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4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정은 어떤가.이따금 몇몇 작품이 외국에 번역소개돼 호평을 받는 일로 세계문단에서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믿는다면 오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한번도 타지 못한 노벨문학상을 이웃 일본이 두번이나 탄 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다.「세계속의일본문학」은 있고 「세계속의 한국문학」은 없는 것이다.
때마침 문화체육부는 내년을 「문학의 해」로 정하고 문학발전을위한 여러가지 행사를 준비중이라 한다.
이런 가시적 행사만으로 문학발전을 꾀할 수 있다면 매년을 「문학의 해」로 정한들 어떠랴.물론 문학의 침체는 문인의 탓만도,독자의 탓만도 아니다.
기왕 「문학의 해」로 정했다면 한햇동안만이라도 그 침체의 원인이 어디에 있고,무엇이 한국문학을 세계문단에 발돋움하게 하는원동력이 될는지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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