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입문기>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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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가 컴퓨터란 존재를 처음 인식한 것은 어떤 공상과학 만화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어릴때 보았던 그 만화속의 컴퓨터는 릴테이프를 보조기억장치로 사용하는 메인프레임 급의 컴퓨터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기본이고 적절한 대처방안을 조언하기까지하는 그야말로 만화속의 컴퓨터였다.
한편 그나마 현실적이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처음 본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8비트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보급된 82년 혹은83년으로,교육용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5개 회 사의 제품이 각각 1천대씩 5천대가 보급되던 때였다.
같은 반 친구가 갖고 있던 컴퓨터 제품 브로셔를 우연히 보게되면서 컴퓨터가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컴퓨터는 계산기와 틀려서 순차적인 계산을 하는것 이외에 「if」라는 명령을 통해서 판단과 분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부터 컴퓨터는 내게 가장 재미있는 관심거리의 하나였고 지금에 와서는 직업이 되었으며,나는 취미가 직업이 된 아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들어 문득 『내가 어쩌다 컴퓨터를 배워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지』하고 생각하면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갈망」이다.
컴퓨터를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접하기는 했지만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컴퓨터를 사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설사 말했다 하더라도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컴퓨터에 대한 갈망을 풀기위해 갖고 싶었던 애플Ⅱ의 사용설명서를 몇번씩 보았었고 컴퓨터에 관련된 책들이나 잡지를 정말 열심히 읽었다.물론 컴퓨터는 없으면서 말이다.또 학교 근처에 있는 컴퓨터 판매장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 기도 했다.
지금도 갖고 있는 그때의 책들을 보면 그때 이 정도 열심히했었구나 하는 만족감이 들기도 한다.
학력고사라고 불리던 입시를 치르고 부모님께 부탁해 23만5천원짜리 애플 호환기종과 29만원짜리 디스크 드라이브를 사던 날의 기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모니터는 따로 사지않고 중고 흑백TV로 대신하기는 했지만 갖고 싶었던 내 컴퓨터를 가졌다는 기쁨으로 며칠은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새롭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여유있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고지금까지 발전해 왔지만 고등학교때 가졌던 내 「갈망」은 내가 아직도 내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같고,이런 갈망을 가진 사람에게만 컴퓨터를 팔아야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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