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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꽃피운코리안仁術 28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아프리카 내륙 황무지.숨이 턱턱 막히는 섭씨 43도의 폭염아래 흙먼지 뒤집어쓴 양과 낙타,움직이는게 신기할 정도로 낡아빠진 오토바이.자동차,거기에다 남루한 차림의 인파가 뒤엉켜 있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인 니제르 수도 니아메의 거리 풍경.문명의 바닥이 과연 어디인가 실감이 난다.오물 썩는 냄새,발을 디딜 때마다 피어오르는 푸석푸석한 흙먼지는 이미 이곳의 숨쉬는 공기다. 니아메국립병원-.유일의 종합병원이라는 곳에 들어서면『어떻게 여기를 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견디기 힘든 악취가 진동하는 응급실.입원실은 병을 얻어 나가지 않으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지경이다.환자들의 퀭한 눈동자에서 고달픈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그림자를 본다.
이 병원에서 국제협력단 의료봉사단으로 파견된 김대수(金大洙.
60).조규자(曺圭子.59)씨 의사부부가 각각 28,27년간 인술(仁術)을 펼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러운 곳에 인생의 절반을 묻었다는 것이 선뜻 이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내 金씨 부부의 인생 여정에 세속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는게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처음엔 솔직히 낭만적인 봉사심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을 디뎠습니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을 떠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됐습니다.우리에게 목숨을 맡기러 오는 환자들의눈망울을 외면할 수 있습니까.』 실제로 金씨와 부인 曺씨는 이나라 유일의 결핵전문의자 이비인후과전문의다.봉사활동 정년이 60세지만 올해 정년을 맞는 金씨 스스로 연장근무하게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조르고 있는 것도 이곳의 딱한 현실 때문이다.두 사람이 전하는 병 원의 실상은 한마디로 처참 그 자체다.수술실에어컨이 2년 넘게 고장난 채 방치되는 바람에 땀과 눈물 속에서 메스를 든 적도 부지기수다.
曺씨는 지난해 에어컨을 고쳐달라는 요청을 수차례 했으나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에어컨을 고쳐준 쪽은 병원측이 아니라 曺씨에게 치료받았던 상인이었다.그는 『당신이 돌아가면 이 나라의 많은 어린이들이 죽는다』며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응급환자의 수술을 앞둔 마취 의사가 봉급을 받지 못했다고 사라져버리는가 하면 병동마다 쌓인 쓰레기에 파리.모기가 들끓거나수도관이 터져 하루종일 물이 새나와도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우리 기업이 무상제공한 앰뷸런스 5대는 니 제르정부가 운송료를 해결하지 못해 7개월이나 공항에 묶여 있었다.
우리 공관이 없는 니제르에서 두 사람은 민간대사 역할도 해왔다.전직대통령 2명을 비롯,니제르 실력자들과 가족의 치료를 도맡아 오고 있다.
「닥터 킴」「마담 킴」은 이제 니제르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인이다. 金씨부부는 잠시 돈벌이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개인병원을차리면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었고 실제로 주위의 권유도 많았다. 그러나 인생을 걸고 세운 뜻에 흠집낼 수 없다는 결심으로버텨냈다.부인과 함께 다진 가톨릭 신앙도 흔들림을 막는 좋은 방패였다.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수도의대 동창으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후 경찰병원 건강관리과장(金).국립의료원전문의(曺)로 예약된 행복을 접어두고 각각 33,32세의 한창 나이에 아프리카行을 결행했다.
그 때 젖먹이였던 두 딸이 파리에서 굴지의 제약회사 간부와 간호사로,아들은 캐나다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장성해 있다.
『어차피 한번인 인생,삶에 헛된 시간은 얹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살아온 것 뿐입니다.』 남편이 먼저 떠난 아프리카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부인 曺씨는 『3주만 다녀오겠다』고 갔던 아프리카行에 30년째 살고 있다.
[니아메=李元榮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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