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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VID 고집 땐 북핵 안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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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25~28일 열린 2차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등 주요 원칙에 대해 몇가지 합의사항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가장 첨예한 현안인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의혹 규명, 북핵 동결 및 폐기, 그리고 그에 따른 상응 조치 등 세부 방안에 대해서는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완전하고(Complete), 검증 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핵폐기(Dismantlement)', 즉 CVID라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의 주장을 북한이 강력히 거부한 때문이다. 미국은 회담기간 내내 CVID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말하는 CVID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북핵 관련 프로그램들이 어떤 것을 폐기해야 '완전'한 것인지, 이들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여야 '검증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폐기해야 '돌이킬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전혀 논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고작 '북한의 기존 핵활동에 HEU 프로그램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정도뿐이다.

CVID처럼 의미가 불확실한 용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HEU 프로그램의 경우 우라늄 농축의 특성상 탐지가 매우 어렵다. 북한 전역에 걸쳐 의심 지역의 반경 수㎞ 범위에서 환경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는 방법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군사시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북한이 모든 군기지와 지하 벙커의 사찰까지 수용하는 상상 이상의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완전한' 검증은 불가능한 것이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또한 간단치 않다. 지난해 북한이 재처리를 끝냈다는 8000여개의 사용 후 핵연료봉은 논외로 쳐도,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전의 과거 플루토늄의 경우 이미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과거 데이터가 유실되는 등 기술적 문제로 100% 검증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그 검증 기간도 북한이 최대한 협조한다는 가정하에 3~4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북핵 CVID 정책'은 미국의 대표적 민간 핵 전문가들로부터도 비판받고 있다. 세계적 핵 전문가인 프린스턴대의 프랭크 반 히펠 교수와 핵 컨설턴트 프레드 맥골드릭은 지난달 말 "100% CVID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준의 CVID를 정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CVID 정책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정부 내에 일치된 의견도 없는 것 같다"고 평가한 바 있다. 3월 1일자 세계일보에 따르면 케네스 퀴노네스 국무부 전 북한담당관 또한 "검증 문제만 해도 어떤 절차로 이뤄져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1년 이상 내세우고 있는 CVID는 일종의 '선전'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CVID를 모호한 '수사'로 방치하고 있는 이유가 고의인지 여부는 단언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CVID라는 네 글자를 주문처럼 되뇌고 있는 동안에는 북핵 문제에 있어 어떠한 해결의 실마리도 풀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충분한 기술적 검토없이 미국의 CVID 개념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전문가적 관점에서 볼 때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CVID의 개념 규정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강정민 원자력정책센터 위원·핵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