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 러시아’ 무엇을 할 것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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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38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 크렘린 궁에서 집권 8년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기자 1000여 명이 몰려들어 ‘푸틴 시대’의 연장 가능성을 암시했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8년 전 러시아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처했다.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개인 예금은 평가절하됐다. 체첸 분리를 주장하는 테러리스트들은 다게스탄과 다른 도시들을 공격했다. 국가 권력은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고 국가 제도는 약화되고 법 제도는 무시됐다. 언론들은 특정 기업의 경제·정치적 주문에 따라 움직였다. 경제의 상당 부분이 독과점 재벌(oligarchs) 또는 범죄조직의 지배 아래 있었다. 재정은 고갈돼 외채에 의존했다. 1998년 국가 부도 상태가 초래돼 기업 파산과 빈곤·실업으로 이어졌다. 실질소득은 91년의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의 3분의 1은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경제난 때문에 사회악·부패·범죄는 확대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세계 강국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나는 몇몇 수치를 인용하고 싶다. 지난 8년간 러시아에 대한 외국 투자는 7배나 급증했다. 자본의 순유출은 99년 600억 달러나 됐지만 지난해 823억 달러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증시 규모는 99년에 비해 22배나 늘어났다. 이는 멕시코·인도·한국보다 빠르게 커진 것이다. 구매력지수로 따져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프랑스·이탈리아를 추월해 7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은 스포츠·경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것이다.

우리는 2010년까지의 발전계획을 갖고 있지만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우리는 아직 에너지와 1차 산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지 못하면 생활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안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새롭고 복잡한 경제정책 이슈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경제가 극히 비효율적이라는 게 최대 문제다.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몇 배나 낮다. 국가 체제는 관료화되고 부패에 빠져 다이내믹한 발전은커녕 긍정적 변화의 동기부여도 못하고 있다. 과도한 중앙집권화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결정조차 몇 달, 몇 년이 걸린다. 지구촌 경쟁이 격화되고 숙련 노동·에너지 자원의 비용이 높아지는 마당에 이런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첨단기술과 지식경제, 항공기·조선·에너지, 정보·의료 분야에서 발전을 꾀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체제와 경쟁 환경을 촉진해 기업들이 경비 절감, 생산시설 현대화, 소비자 요구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안보와 국방력, 외교정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군비 경쟁의 새로운 소용돌이에 들어섰다.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니다. 대다수 선진국은 앞선 기술력과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활용해 차세대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그들의 국방비는 우리의 수십 배에 이른다. 우리는 재래식 무기 개발·배치를 제한하는 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을 준수하고 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이를 비준하지 않거나 준수하고 있지 않다. 나토는 우리 국경 가까이에 군사적 인프라를 접근시키고 있다. 쿠바·베트남의 군사기지를 폐쇄했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미군기지가 루마니아·불가리아에 설치되고, 폴란드·체코에는 미사일방어(MD) 체제가 조만간 설치될 전망이다. 우리는 필요한 대응 조치를 내려야 할 상황에 몰리고 있다.

러시아는 앞으로 다른 나라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신무기 생산을 시작할 것이다. 신기술은 군사력의 조직 방식에 대해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돌파구는 생물학·나노·정보기술의 혁신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현대 군대는 차세대 무기의 배치·활용에 달려 있다. 인적 자원 요소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혁신적인 군대는 전문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군인들의 연봉을 올리고 사회보장과 주택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인 국방 발전계획을 새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세계는 복잡하고 혹독하게 변하고 있다. 자유와 개방이라는 고상한 구호가 어떻게 한 나라, 한 지역의 주권을 파괴하는지 우리는 목격해 왔다. 자유무역과 투자라는 화려한 명분 아래 선진국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하곤 했다. 자원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연가스와 원유는 수많은 분쟁을 초래하고 있다. 세계는 러시아와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있다. 우리는 불공정한 경쟁과 자원 접근권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명심해야 할 사항은 국내 발전을 파괴할 값비싼 대결이나 새로운 군비경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우리는 안보·과학·에너지·기후변화 등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지역 통합과 무역·경제·투자 분야에서 밀접한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국가이지만 누구를 배척하거나 폐쇄·고립 정책을 택할 의도가 추호도 없다.

나는 확신한다. 독립적이고 실용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책을 펼칠 때 러시아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할 것이라고. 오늘 우리는 러시아의 장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를 결정하고 있다. 바로 2020년까지의 발전전략이다. 러시아는 엄청난 천연자원과 과학적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러시아가 전 세계의 확고한 지도국가가 되고 인민들의 삶은 남부럽지 않을 것이라고.

정리=이양수 기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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