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적임자인가 내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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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자.민주당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서울시장은 이회창(李會昌)전 국무총리임이 분명하다.양당이 다퉈 그를 후보로 모셔가려는 것은 그가 서울시장에 최적임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사건건 다투는 양당이 「李會昌서울시장」에는 모처 럼 의견일치를 보고있는 셈이다.그렇다면 6월지방선거의 최대관심사인 서울시장선거는 싱겁게 끝나야 마땅하다.양당이 사이좋게 李씨를 연합공천하거나 법적으로 연합공천이 불가능하다면 어느 한 쪽이 李씨를공천하고 다른 쪽이 즉각 환영.지지성 명을 내면 되지 않겠는가.李씨를 최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이상 다른 당의 후보라고 반대해서야 될 일이 아니다.양당이 이처럼 李씨를 함께 민다면 李씨의당선은 무난할 것이고 선거는 싱겁게 끝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게 될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해도 좋다.양당이 모두 그를 모셔오기 경쟁을 하면서도 그가 다른 당 후보로 나서면 곧 李씨 아닌 다른 사람을 공천해 李씨의 낙선에총력을 쏟을게 뻔하다.그렇다면 李씨가 자기 당 후보가 될 때엔최적임자고 다른 당 후보가 되면 최부적격자(最不適格者)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같은 사람을 두고 내편이면 최적임자고 네편이면최부적격자가 된다니 세상에 이런 논리도 있는가.그러면 양당은 서울시장후보로 적임자를 찾는가, 내편을 찾는가.
지금 각 정당의 공천작업을 눈여겨 보면 이처럼 논리도 없고 상식에도 안 맞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공천기준이나 원칙이 뭔지 모를 판이다.가령 각 당은 「왜」李씨를 모시려 하는지 그 「왜」의 논리가 없다.서울시의 문제는 뭣이고 바람직한 발전계획은 뭣이니까 어떤 인물이 적임자라는 식의 소박한 논리라도 있어야 할게 아닌가.
다시 말해 지방행정에 대한 각 당 나름의 정책과 구상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공천기준을 마련한 다음 그 기준에 맞는 인물을 찾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그러나 어느 당이고 지방자치시대의 국정운영이나 자치단체의 발전문제에 관해 진지한 연구나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민자당의 지방자치정책과 민주당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고,정당공천을 하기로 했으면 공천을통해 구현하려는 자기 당의 정책이 있어야 할텐데 그것이 뭔지도알 수 없다.어떤 시정(市政).어 떤 도정(道政)을 추구하는지,어떤 시와 도를 만들 작정인지 기본적인 그림도 없는 것이다.
선거철이면 억지로 짜내서라도 제법 그럴듯한 정책을 내는 법인데 이번엔 그런것도 없이 그저 표(票)가 나올만한 인물들만 쫓아다니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몇몇 인망있는 명사(名士)들은 가만히 있는데도 어제는 이 당 후보,내일은 저 당 후보가 되는 민망한 처지가 돼버렸다.공천을 할 때 하더라도 정당들은 좀「예절」도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런 문제도 있다.명색이 지방선거를 한다면서도 상당수 지역에서는 선거아닌 사실상의 중앙임명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이다.부산.경남은 민자당,호남은 민주당의 표밭인데 이런 지역에서는 중앙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기 쉽다.선거라 하 지만 공천권을 쥔 중앙의 최고실력자가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그나마 경선이라도 있으면 지방당원이나 지역주민의 의사가 다소나마 반영될수도 있겠지만 그런 지역일수록 「金心」이 절대적이어서 실제 경선도 있기 어렵다.
벌써 한참 늦은 감이 있지만 정당들의 지방선거에 대한 기본입장의 전환이 없으면 이런 문제들은 시정될 수가 없다.지방자치를지방자치로 보지않고 집권경쟁의 전초전으로 보는 전략부터 바꿔야한다.지금 나타나고 있는 각종 문제점의 대부분 이 차기(次期)집권경쟁에서 오는 현상들이다.
***차기집권경쟁 양상 지방행정의 청사진이나 누가 적임자인지는 관심도 없고 오직 내편.우리편을 많이 당선시켜야 권력경쟁에유리하다는 계산만 작용하고 있다.불화로 갈라선 사람을 새삼 그리워하거나 민주화투쟁을 간판으로 내걸면서도 비판해온 권위주의정권의 관료 도 가리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다 그때문에 일어나는것이다. 이제라도 지방화시대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공천기준에 따라 직계아닌 적임자를 공천해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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