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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의나!리모델링] 두려워 말라, 사랑은 본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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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32세의 회사원 H씨가 상담실을 찾았다. 그는 사는 게 즐겁지 않고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특히 여자를 만나도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연애다운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가 제대로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은 ‘짜증’뿐이었다.

주변을 보면 사람은 괜찮은데 연애를 유독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뜨겁게 타오르지 못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하고, 사랑의 감정에 대해 늘 자신 없어 한다. ‘첫사랑을 못 잊는 것일까?’ ‘눈이 너무 높은 것일까?’ 아니면 ‘성 정체성의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이들은 흔히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사랑을 통해 구원을 꿈꾸는 ‘사랑망상증’이다. 이들은 사랑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기에 결코 만날 수 없는 이상적인 연인만을 찾는다. 이들은 딱 맞는 천생연분을 찾으려고만 할 뿐 관계를 발전시킬 줄 모른다. 둘째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관계를 피하는 ‘사랑기피증’이다. 이들은 버림받음에 대한 상처와 이로 인해 거절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사랑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랑불감증’이 있다. 이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부정하고 사랑을 억압해 온 사람들이다. 제각각 다른 양상이지만 각자의 방어 방식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 애정결핍이라는 문제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나는 H씨에게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라고 해 봤다. 머뭇거리다가 그는 ‘사랑은 없다’고 대답했다. 두 글자 속에 그가 살아온 관계의 역사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가족과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기억은 정말이지 바짝 마른 행주처럼 물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1년 365일 가게 일에 매달리느라 늘 지쳐 있던 부모님 때문에 그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우두커니 TV 보던 기억밖에 없었다. 나는 이어 부모님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분이었는지를 물었다. “부모님요? 나에게 부모님은 하숙집 주인 같은 분들이었어요.” 그 말 속에 사랑불감증을 앓아 온 그의 핵심적 문제가 담겨 있었다.

이렇듯 연애를 못 하는 데는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 과거가 지금 연애를 못 하고 있는 모든 이유가 될 수 없다. 보다 큰 책임은 과거의 문제를 끊임없이 확대시키고 그 문제 속에 숨어 지내온 자신에게 있다. 나는 연애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본다. 다만 성인 간의 연애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을 연애에서 구하려는 사람들과, 상처 없는 무결점의 사랑을 고대하는 사람들과, 사랑이 없다고 믿고 사랑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라고 본다. 물론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사랑은 본성이자 인간의 존재 조건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고통보다는 사랑의 본능을 거부하는 데 따른 고통이 더 큰 법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라!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해요’라는 잭 니콜슨의 영화 대사처럼 우리는 사랑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다. 곧 봄이다. 새봄에는 얼어붙은 H씨의 마음 사이로 새로운 사랑이 움터 나오길 기원한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연애 못 하는 당신을 위한 조언

① 사랑망상증의 경우 : 성인 남녀 간의 사랑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자신의 문제를 상대를 통해 해결하려 하지 말라. 자신을 본질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당신 한 사람뿐이다.

② 사랑기피증의 경우 :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버릴 거라는 불안은 거짓이다. 당신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헤어졌을 뿐이다. 그것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거나 당신과 안 맞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충실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③ 사랑불감증의 경우 : 사랑은 있다. 단지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상대를 관찰하지 말고 느껴 보아라. 관계의 바깥에 머무르지 말라. 한걸음 더 다가서라. 이성을 닫고 감성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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