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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태 얼굴엔 ‘경기 불안’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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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같은 5%라도 내용이 달랐다.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월 콜금리 운용 목표를 6개월째 현 수준인 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시장이 주목한 것은 다음 수순이다.

이성태(그림) 한은 총재가 금통위 직후의 회견에서 경기 하락에 대한 우려를 비중 있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한은이 배포한 발표문에도 물가보다는 경기에 대한 걱정이 더 짙게 반영됐다. 특히 1월에는 쓰지 않던 ‘경기의 하방 리스크’라는 표현을 명기했다. 이 총재는 이를 “경제성장률 전망이 아래쪽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기가 예상대로 상승 기조를 탈 것이라는 한 달 전의 예상은 “예상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후퇴했다. 경기의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변수로는 유가 상승 대신 미국의 경기 부진이 거론됐다.

물가가 불안하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금리 인하의 여지를 보이지 않던 1월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를 준비 중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책방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은 셈이다. 하준경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의 하방 리스크를 언급한 것은 경기 상황에 따라 앞으로 금리를 인하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은 채권시장에 즉시 반영됐다. 금통위가 끝나기 전 0.06%포인트까지 올랐던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금통위 직후 급락해 장중 한때 콜금리보다 낮은 4.99%까지 내려갔다. 결국 전날보다 0.07%포인트 낮은 5.01%로 마감했다. 이를 두고 한 증권사 채권부장은 “향후 콜금리가 떨어질 것을 전제로 한 시세”라고 말했다.

물론 이 총재가 콜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리겠다고 암시한 것은 없다. 언제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말했다. 갑자기 핸들을 확 꺾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단 차선을 바꾼 셈이다. 시장에선 3월보다는 2~3분기를 인하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은 한은이 2분기에 콜금리를 최소한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윤호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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