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창경궁 방화 땐 범행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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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종기씨는 2006년 4월 사적 123호로 지정된 창경궁 문정전에도 불을 질렀다(사진). 그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돼 같은 해 7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구속된 기간은 77일이었다.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하지 않아 1심에서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채씨는 이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에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불태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범행이 유죄로 확정되면 문정전 사건의 징역형도 되살아난다.

당시 판결문과 수사 기록에 따르면 채씨는 “집 일부가 도시계획도로로 수용됐는데 보상금이 적다. 고양시청, 대통령 비서실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남들의 주목을 받아 억울한 사연을 얘기하려 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채씨는 자신의 혐의를 자백했다가 부인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문정전 방화에는 휴대용 부탄가스가 사용됐다. 문정전의 출입문 안쪽에 신문지를 놓고 그 위에 부탄가스 4통을 올려놓은 뒤 신문지에 불을 붙여 가스통을 폭발시키는 수법이었다. 불길은 문정전 출입문과 벽 일부를 태웠다. 채씨는 목격자들에게 현장에서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수사 과정에서 채씨는 혐의를 인정하다가 “나도 목격자일 뿐”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검찰에서는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혐의가 충분히 입증됐음에도 고집불통이었다”고 전했다.

검찰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용 부탄가스 4개의 유통 과정을 추적해 채씨의 범행을 입증했다. 문제의 부탄가스가 채씨의 주거지 인근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됐고, 이 할인점 계산대 근처의 CCTV에 백발에다 키가 큰 채씨가 부탄가스를 사는 장면이 녹화된 것이다. 채씨의 변호인도 범행을 자백해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할 정도로 확실한 증거였다. 채씨는 기소된 이후 재판 막바지에 혐의를 시인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채씨는 현재도 당시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2일 경찰이 확보한 채씨의 편지에는 당시 검사, 변호인, 재판부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편지에는 “검찰은 (부탄가스 구입)금액 지불하는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판사는 과학수사 해 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았다” “변호사는 ‘자백하고 나오는 것이 제일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자신은 결백한데 죄를 뒤집어 썼다는 얘기다. 문정전 사건을 담당한 채씨의 변호인은 “채씨는 가족들이 혐의를 인정하도록 설득해야 할 정도로 앞뒤 가리지 않는 외골수였다”고 말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실형이 선고됐다면 이번 숭례문 방화를 막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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