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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칼럼>관철동시대 28.應氏盃 결승 최종국 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아마도 이 한판처럼 이목을 집중시켰던 바둑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 없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바둑을 둘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한판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었다.그 중에서도 서울과 베이징(北京)은 눈을 부릅떴다.
전적은 2대2.최종국의 승자는 누구냐.
89년9월5일 아침.싱가포르의 웨스틴스탠퍼드호텔.특설대국장 입구에 주최자인 잉창치(應昌期)씨와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할 우칭위안(吳淸源)9단이 나란히 섰다.吳9단의 흰 눈썹과 應씨배 결승전을 알리는 붉은 글씨가 강력한 주문처 럼 사방을 압도했다. 섭9단이 걸어오고 있었다.나라에서 기성(棋聖)칭호를 받은 세계바둑계 유일의 인물. 일본의 고수들을 휩쓸어 서양바둑꾼들의 컴퓨터 분석에서 랭킹1위에 올라있는 상승일로의 강자.
문화혁명동안 모든것을 잃었으나 그 혹독한 시련속에서 오히려 大地의가르침을 터득했다는 불굴의 승부사.일명 철의 수문장 또는 전신(戰神) 그가 악수를 나누고 대국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핏기가 싹가신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감돌았다. 블록렌즈처럼 둥근 얼굴에 가득하던 득의의 미소도 자취를 감췄다.
그의 모습은 영화속의 저승사자 그대로였다.
잠시후 曺9단이 윤기현9단과 함께 나타났다. 어린시절 이국의추운 다다미방에서 홀로 잠들며 수만개의 꽃송이가 만개하는 꿈을꾸곤하던 바둑의 천재.
척박한 한국바둑을 등에 지고 숨쉴사이 없이 전쟁터를 누벼온 한국의 희망. 최연소 입단,최다 타이틀 획득의 세계기록 보유자.기풍은 부드러운 바람,빠른 창,일명 19로의 마술사. 놀랍게도 曺9단의 두눈은 퉁퉁부어 있었다. 그모습이 다시한번 사람들을 짧은 침묵속으로 몰아넣었다 생각컨대 승부는 전날 밤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누가 과연 잠을 잘수 있느냐,이것이 1차승부였던 것이다. 5개월을 끌어온승부,그것이 두사람의 진을 빼놓았고 어젯밤엔 만가지 기억과 만가지 악몽들을 몰고왔다.
그들과의 격투에서 섭9단은 초죽음이 됐고 曺9단도 만신창이가됐다. 그래도 1차 승부에선 曺9단의 판정승이었다고 장담할수있다. 그것이 당시의 예감이었기에 나는 응원나온 교민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깁니다." 오전10시. 應씨룰에 따라 쌍방 1백80개의 돌을 가지고 시작했다. 덤은 8집.應씨룰은 반드시 홀수승부가 나므로 반집이란허수가 없어도 빅이 나오지 않는다. 대국이 끝나면 사석은 돌려준다. 돌려받은 사석과 통속의 나머지 돌로 자기집을 메운다.
하지만 선택권을 얻으면 덤이 크니까 누구나 白을 잡고 싶어한다. 8집의 덤,그것이 이대회의 변수고 전략의 추가 돼왔다.
돌을 가리니 섭9단의 白.曺9단은 장미를 꺼내물고 상념에 잠겼다.
어떤 포석으로 나가느냐. 제2국에서 화점과 소목을 병용,완패 했다. 제4국에서 똑같은 포석으로 나가 지옥같은 계가 바둑에걸려 패배일보직전까지 갔다가 1보 역전승.
그런데 曺9단은 또다시 그포석을 들고나왔다. 순간 섭9단이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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