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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변호사 살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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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내는 월간 시민과 변호사 3월호에는 이런 미국사회의 농담이 실려있다.
「변호사 천명이 탄 비행기가 추락해 변호사가 모두 죽었다.이를 한마디(여섯글자)로 표현하면?」 답은「살기 좋은 세상」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천당과 지옥이 소송을 하면 어느 쪽이이길 것인가」답은「지옥」이다.왜냐하면 변호사들은 모두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변호사는 인구 1만2천명당 1명꼴인 3천5백여명.미국은 인구 3백명당 1명꼴인 70여만명에 이른다.이러니변호사가 공해(公害)쯤이 되어 그런 농담도 생겨났다.마침 이번주 뉴스위크는 드라이브인 맥도널드점에서 산 뜨거 운 커피를 자기 실수로 엎질러 3도화상을 입은 여인이 전문변호사에게 의뢰해무려 64만달러의 손해배상판결을 받아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변호사왕국.소송천국이라는 미국엔 변호사의 폐해만 있는가.결코 그렇지는 않다.「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미란다 신문원칙이 탄생하게 된 뒤안길에는 가난한 트럭운전사의 권리보호를 위해 끈질기게 싸운 변호사의헌신이 있었다.시민의 자유와 인권 신장에 세계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미친 미국 대법원의 숱한 名판례들은 변호사왕국이 만들어 낸 국민의 높은 법의식과 철저한 법치주의의 산물이었다.
이런 미국의 사정에서 보듯 모든 것에는 어차피 빛과 그림자가있게 마련이다.변호사 수가 많으면 많은 대로,적으면 적은 대로그 나름의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선 이것저것 돌볼 겨를도 없이 변호사의 대폭 증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는 변호사,더 넓게는 판사.검사를 포함한법조인들이 그 독과점적 지위에 안주해온 업보(業報)다.법조인들이 신중론의 좋은 근거로 삼고 있는 일본만해도 법조인들이 국민을 위한 공익적 임무에 우리처럼 소홀하지는 않다.도입 역사가 5년밖에 안됐지만 형사사건의 20%를 기본적인 실비만을 받는 당직변호사가 맡고 있고 전체 변호사의 절반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또 국선변호활동도 적극적이어서 기소후엔 변호사선임률이 1백%에 달한다.그래도 변호사수를 대폭 늘리라 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당직변호사제가 겨우 도입되긴 했으나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참여 변호사도 10%선에 그치고 그나마 이름난 변호사는 참여를 기피해 국민의 기대를 충족해주지못하고 있다.국선변호인제의 유명무실은 긴 설명 이 필요없는 것이다.이런 상황인데다가 세금도 제대로 안내면서 일부 변호사들은일반 국민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고속득을 올리고 재조인(在曹人)들과 짝짜꿍으로 전관예우니 뭐니하는 잡음까지 일으키니 여론이 폭발해「혁명적 상황」을 맞 게된 것이다.
단지 감정에서가 아니라 냉철히 이모저모를 따져보아도 신중론보다는 대폭적인 증원론에 더 설득력이 있다.무엇보다도 수요자인 국민 다수가 실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그렇다면 법조인들로서도 차라리 새로운 상황을 전제로 사회적 역할의 확대와 새로운 직업상의 모색을 위한 적극적인 제안을 하고 나서는 쪽이 합당하고 현실적일 것이다.
***여론재판 경계해야 그러나 이번 법조개혁이 요새 유행하는표현대로「변호사 죽이기」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일부 변호사의 악덕을 들어 전체에 대해 마녀사냥식의 여론재판을 벌이다가는 자칫 우리 사회의 소중한「권위」를또 하나 압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누가 뭐래도 변호사는사회의 대표적인 전문가집단이며 그 사회의 지적 수준과 양심과 정의를 대변한다.우리들은 저 암울했던 시대에 우리를 대신해 용기와 양심의 등불을 밝혀 들었던 수많은 변호사들이 있었 음을 잊어선 안된다.이 점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충고에 귀기울일 의무가 있다.군중심리적「죽이기」의 쾌감에 빠져 들었다가는 그 피해가 조만간 부메랑이 되어 우리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상황이 이럴수록 변호사 죽이기가 아니라「변호사 살리기」가 시대어(時代語)가 돼야 한다.

<유승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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