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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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속노래에 있어서「달」은 높이 치솟은「남성」을 가리키고 있다.
그날 닥터 최가 빌려 준 『남성과학』이란 의학 책에 의하면 「남성」의 치솟는 각도도 여러가지다.
20대와 30대의 경우 복벽(腹壁)과 이루는 각도는 30도에서 50도.흡사 한약 약탕관 손잡이 꼴이다.아주 당당하다.40대는 90도 각도로 도해(圖解)설명돼 있다.수평상태다.아직까진믿음직하다.
『달하 높이곰 돋아샤…』라는 「정읍사」의 첫 구절은 이런 상황들을 여인의 입장에서 소원한 것인지 모른다.
다음 구절도 심상치 않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노 젓듯 어기어서 구석구석까지느끼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이다.
『어긔야 어강 됴리 아으 다롱디리』 몇번 되풀이되는 이 후렴은 쾌감을 향한 감탄의 소리다.「노 젓듯 어기어서 어간 좋으리아 자롱지리!」 아롱아롱 얼룩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전 져재 녀러신고요』 보퉁이의 가장자리가 젖어서 문이 열린상태를 표현한 대목이다.「전이 젖어 열렸나요?」 『어느기다 놓고시라』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하소연.「녹신녹신 어녹입니다.
놓아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염려하는 여인의 자상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어긔야 내 가논데 졈그랄세라』 실감나는 구절이기도 하다.「절정으로 내가 먼저 가버리면,그 홍수에 당신이 잠길까 염려됩니다.」 그리고 다시 찬탄의 후렴으로 「정읍사」는 끝나고 있다.
『어긔야 어강 됴리 아으 다롱디리』 이렇게 스스럼없이 천진한 성애가가 또 있을까.
아마도 우리 주위에 남아 있는 고대가요중 첫손 꼽히는 아름답고 야한 노래일 것이 분명하다.
근엄하기 이를데 없는 조선조 선비들이 성종을 졸라 금지가곡으로 묶다 못해,중종 때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개사(改詞)까지 해버린 까닭을 알만하다.곡은 그대로 둔 채 「오관산」(五冠山)이라는 점잖은 가사로 바꿔 부르게 해 놓은 것이다.
중종 14년의 이 개사 소동은 삼국시대부터 연면히 이어져 온섹스 모티브의 문학 흐름에 쐐기를 박은 사건으로 길이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없었던들 우리는 「정읍사」가 「음사」(淫詞)라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음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 「정읍사」를 원래 읊어진 대로 읽고 푸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정읍사」말살사건은 오히려 「정읍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데 기여한 셈이다.없어짐으로써 살아남은 「정읍사」.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역사의 손길」에 길례는 오묘한 조화(造化)를 보지 않을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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