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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시행정 위해 무리하게 숭례문 개방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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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문화재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에 대한 치밀한 문화재 방재시설을 확보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으로 남대문을 개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들에게 뭔가 한 건 보여주려한 서울시의 무리한 선심성 전시행정과 문화재 당국의 무책임에 의해 숭례문이 희생됐다는 지적이다.

숭례문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주도로 2006년 6월 28일부터 전면 개방됐다. 2005년 5월 숭례문 앞 잔디광장을 조성해 개방한 데 이어, 2006년부터 숭례문의 중앙 통로인 홍예문(虹霓門) 안까지 공개한 것이다. 2층의 문루(門樓)는 문화재 보존ㆍ관리 차원에서 개방하지 않았다.

숭례문 개방은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내 개방을 요청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당시 문화재청은 숭례문의 안전문제 등을 들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굵직한 성과물을 내놓고 싶었던 나머지 끈질기게 숭례문 개방을 요구했다.

문화재 당국자는 “숭례문 개방 문제로 인해 문화재청과 서울시 사이에 공문이 오랫동안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화재 발생 직후 숭례문의 관리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국보 1호’임에도 관리 주체는 정부는 커녕 기초자치단체인 서울 중구청 공원녹지과의 일개 팀이었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이번 사고를 예산과 인력 부족 탓으로 돌렸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문화재청 예산은 4천800억원밖에 안 된다. 인원도 750명이 전부”라고 말했다. 또 “방재는 중구청에서 당연히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문화재 관리를 소홀히 하는 기초자치단체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근거도 미약하다. 문화재청은 기초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문화재 관계자는 “전국의 시군구 문화재 담당부서는 우리 (문화재청)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그쪽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조직도 아닌 데 누가 우리 말을 제대로 듣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등 궁과 릉 등에 직할 관리사무소를 두고 있을 뿐 이외의 문화재에 대해서는 제 아무리 국보나 보물이라고 해도 문화재청의 1차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선 시군구의 문화재 관리 부서는 6~8급의 하급직 공무원 몇명이 관내 문화재의 관리ㆍ보수 업무는 물론 다른 시설관리 업무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서울 중구청 공원녹지과 시설관리팀은 국보 1호 숭례문 이외에도 목조 건축물인 사적 157호 환구단을 관리해오고 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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