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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CEO의 삶과 경영 ⑤ “‘우생순’ 덕분에 시름 덜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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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27면

신동연 기자

무자년 벽두 극장가 최고 화제작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다. 지난달 10일 개봉한 이 영화는 설 연휴기간 4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젠 500만 고지 점령 여부가 관심사다. 53억여원의 제작비 손익분기점(190만 명)은 넘어선 지 오래다. 우생순은 2004년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여자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들의 투혼을 그린 영화. 특히 결승전에서 유럽의 강호 덴마크에 맞서 승부 던지기까지 가는 128분간의 혈투를 펼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심재명 MK픽처스 대표

“우생순은 이 시대 아줌마들의 이야기죠. 소재(여자 핸드볼팀)뿐 아니라 제작과 감독·주인공 등을 모두 여성이 담당했습니다. 여성이 주도한 영화란 점에서 더욱 애정이 갑니다.” 우생순을 만든 MK픽처스의 심재명(44·사진) 대표는 의외로 담담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중국 베이징올림픽 여자 핸드볼 아시아 예선전도 우생순의 인기 유지에 한몫했다. 한국이 일본을 가볍게 누르고 올림픽 티켓을 거머쥠으로써 아테네의 감동을 다시 한번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도 이 경기를 마음 졸이며 봤단다.

심 대표가 우생순의 제작을 결심한 건 4년 전. 아테네올림픽의 감동 스토리에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여성 작가 나현씨와 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문소리·김정은·김지영 세 여주인공을 강인한 핸드볼 선수의 이미지로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핸드볼 경기가 열릴 때마다 관전하게 하고, 비디오 분석을 해 가며 몸동작을 익히게 하는 등 선행 작업이 만만치 않았던 것. 특히 예쁘고 여성스러운 역할을 많이 해온 김정은이 터프한 감독 역할을 소화해 내도록 대대적으로 변신시키는 데 큰 공을 들여야 했다.

심 대표는 ‘공동경비구역 JSA’ ‘접속’등의 제작자로 영화계에선 명성이 자자한 인물. 기획·시나리오·펀딩·캐스팅 등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도맡아 해낼 수 있는 파워 우먼이다.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고선 한국 영화에 대해 안다고 행세할 수 없을 정도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1987년 대학 졸업 후 잠시 출판사에 근무하다 한 영화사의 카피라이터로 채용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초등학생 때 가족과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품어온 ‘멋진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워커홀릭’ ‘독한 X’이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영화에 열정을 쏟은 그는 92년 영화 기획·홍보사 ‘명기획’을 설립하면서 홀로 서기에 나섰다. 94년 이은 감독과의 결혼은 그가 더 넓은 영화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결혼 이듬해 이 감독과 함께 명필름을 설립하면서 영화 제작업에 뛰어든 것. 명필름은 ▶코르셋(96) ▶접속(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바람난 가족(2003) ▶해피엔드(2004) 등의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승승장구했다. 이 같은 성공에 힘입어 명필름은 증시 상장 기회를 잡게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이 설립한 ‘강제규필름’과 합병한 뒤 공구회사 세신버팔로와 주식 맞교환을 통해 우회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명필름과 강제규필름의 합병회사인 MK픽처스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다. 하지만 희망찬 미래는 오지 않았다. 2005, 2006년 연속 적자를 내며 경영난에 빠진 것이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심 대표 부부와 강제규 감독은 지난해 7월 강원민방에 지분을 매각하게 됐다. 심 대표는 “2006년 말 닥친 충무로의 위기 상황으로 상장기업의 틀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그는 우생순의 성공을 발판으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강 감독과의 회사 분리 문제로 개봉을 미뤄온 ‘걸스카우트’ ‘소년은 울지 않는다’ ‘작은 연못` 등을 잇따라 선뵈고 애니메이션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란다.

그는 “첫 작품 ‘코르셋’을 만들 당시 자금이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 쓰던 걸 생각하면 지난해 마음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올해는 색깔이 분명하고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WHO?

-1987년 동덕여대 국문과 졸업
-88년 서울극장 홍보 담당
-92년 영화 기획·홍보사 ‘명기획’ 설립
-95년 남편(이은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사 ‘명필름’ 설립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제작
-2001년 미 연예지 ‘버라이어티’의
‘주목할 만한 10인의 제작자’ 선정
-2005년 비추미 여성대상 달리상
(문화·언론과 사회공익 부문) 수상
-현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작
여성영화인모임 기획이사 겸 영화진흥
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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