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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선정위원회’가 고른 新고전 ⑥ 이중나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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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15면

이중나선 The Double Helix 제임스 웟슨, 1968, 궁리(2006)

‘내 코를 닮았어야 했는데 하필 남편 코를 닮아서…’.

DNA 구조 발견 ‘생명의 설계도’ 얻다

잠자고 있는 딸의 모습이 한없이 예쁘다가도 제 아빠를 쏙 빼닮은 ‘돼지코’를 보면 속이 상한다. 더불어 어떻게 엄마·아빠를 닮아 나오는지 신기하다. ‘생명의 신비’ 하면 왠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누구나 생명의 신비를 체감하며 살고 있다. 생명체의 설계도로 불리는 DNA가 연출한 ‘나와 같지만 다른’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2000년 세계의 화제는 DNA였다. 국제공공컨소시엄인 ‘인간지놈 프로젝트’(HGP)와 민간기업인 ‘셀레라 지노믹스’가 인간의 염색체 지도를 작성했으며 염색체 안의 염기서열이 거의 분석됐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06년 HGP는 인간 염색체 23개 중 가장 긴 1번 염색체를 해독함으로써 ‘생명의 책’으로 불리는 인간지놈지도를 완성했다. 이로써 23개 인간 염색체의 정체가 모두 드러났다.

21세기 생명과학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정보를 담은 분자의 본질과 이들의 화학적 특징을 밝힌 DNA 구조의 발견에서 시작했다. 미국의 제임스 웟슨과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은 1953년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구조, 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비밀이 DNA라는 분자의 이중나선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중나선』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발견자인 웟슨이 직접 썼기 때문인지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을 두고 저자를 포함해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협조·암투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더불어 당시 미국과 영국의 학문적 자존심 대결과 실험실 분위기,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연구비가 끊길까 두려워하는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도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물리학자이지만 생물학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둔 크릭, 화학에 약하지만 DNA의 X선 회절 사진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며 DNA의 구조를 파고든 웟슨이 위대한 발견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과정이 한편의 휴먼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2008년 1월 미국 크레이그벤터연구소(CVI)의 연구진은 ‘마이코플라스마 게니탈리움’이라는 미생물이 생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유전자 조합을 알아낸 뒤 지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합성한 DNA를 이어 붙여 여러 개의 조각을 만든 뒤 이것을 효모에 넣어 합성하는 방법으로 59만2970개 염기쌍 전체를 만들었다. 이 인공 지놈을 살아 있는 박테리아에 주입한 뒤 세포가 생명을 유지한다면 ‘인공생명체’가 탄생한다는 말이다. 생명2.0 시대가 열릴 가능성을 엿보는 현 시점에서 『이중나선』을 읽는 것은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新)고전=지난 반세기 동안 출간된 책 중 현대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문제의식을 제공한 명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산하 ‘좋은 책 선정위원회’가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매주 한 권의 신(新)고전을 골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