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시시각각

금통위를 내버려 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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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름도 요상하고 내용은 더 알 길이 없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이 우리네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으니 한편으론 괘씸하고, 다른 한편으론 무섭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모처럼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던 순진한 국민은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경제회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새 정부로서는 서브프라임인지 뭔지가 ‘웬수’같을 것이다. 맛깔스러운 상을 잘 차려놓고 밥 숟가락을 막 들려는 찰나 난데없이 웬 불한당이 나타나 홱 재를 뿌린 격이다. 새 정부는 당초 성장률 목표를 연 7%에서 6%로 낮췄지만 그마저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불길한 관측이 무성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우리 경제에 파급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주식시장이다.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급한 나머지 마구잡이로 국내 주식을 내다팔았다. 지난해 기운차게 오르던 국내 주가는 이 걸로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다른 한 가지는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위기의 전염 사태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그 후유증으로 세계 경제가 주저앉는 시나리오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가 이 파고를 비켜가기는 쉽지 않다. 세계경제 침체의 쓰나미가 닥치면 가까스로 살아나려던 경제회생의 불씨마저 삼켜버릴 공산이 크다. 경기침체는 주가 하락보다 파장이 훨씬 넓고 상처가 더 깊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경제팀에 슬며시 다가올 유혹이 ‘경기 부양론’이다. 새 대통령 취임한 후 몇 달이 지나고도 달라진 기운을 못 느끼겠다거나 오히려 경제가 나빠졌다는 소리가 나오면 이 유혹은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대통령은 조바심을 내고, 각료와 보좌진은 묘방을 찾아 머리를 쥐어짤 것이다. 이때 경기부양책은 차마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이 당선인은 인위적 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러운 부양책을 찾으면 된다. 첫 번째 대상은 아마도 ‘금리 인하’가 지목될 공산이 크다. 세금을 내리거나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방법은 대번에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그에 비해 금리를 낮추는 것은 그런 부담이 덜하다. 한국은행에 은근슬쩍 공을 넘기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섰다는 욕을 먹을 염려도 적다. 실제로 인수위는 한은의 업무보고 때 그럴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에선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총대를 멨다. 지난해부터 찔끔찔끔 내렸던 기준금리를 불과 8일 사이에 화끈하게 1.25%포인트나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벌써부터 버냉키의 오버 액션이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수군거림이 들린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 차는 2%포인트나 벌어졌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느낄 부담감도 그만큼 커졌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자산시장의 거품이 이미 꺼지기 시작했지만 국내에는 아직 과잉유동성의 거품이 여전하다. 금리를 더 올리지 않는 것만도 상당히 자제하는 셈이다. 연초부터 물가도 심상치 않다. 여기다 대고 금리를 내리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무리다. 설사 앞으로 금리를 내려야 할 사정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금융통화위원회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 정부 관료들이 나설 일이 아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