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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선거 게시판' 실명제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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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많은 독자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찬성론자들은 게시판이 욕설과 근거없는 비방의 온상이 되는 것은 익명성의 폐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실명제를 도입하되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을 막을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반대하는 독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김창우 기자

*** "얼굴 없는 글쓰기 욕설·비방 난장판"

인터넷은 의사표현의 목적성에 비춰 볼 때 순수한 사적 공간만은 아니며, 공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공개된 토론마당이다. 특히 전파성이 엄청난 인터넷의 속성상 14일에 불과한 선거운동 기간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과 유언비어가 난무할 경우 피해 당사자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리 헌법 어디에도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도 좋다는 규정은 없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오프라인상의 후보 비방과 유언비어 유포 행위 등에 제약을 두는 만큼 온라인상에서도 익명성 뒤에 숨어 해악을 끼치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인터넷 실명제란 글을 올릴 때마다 실명을 밝히는 제도가 아니다. 최초 가입 시에는 본인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이후 필명(닉네임)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책임을 져야 할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보통신부에서 2002년 8월부터 게시판 실명제를 운영한 결과 명예훼손, 상업적 광고, 특정인에 의한 글 도배 등이 69%에서 2.1%로 크게 줄었고, 이용자 수는 실명제 시행 전보다 오히려 30% 이상 증가했다. 어느 누구도 악의적 정보 유포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은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

심재철 한나라당 국회의원

*** "신분 노출될 경우 표현 자유 큰 침해"

인터넷 실명제 논란의 핵심은 국가가 국민에게 실명 사용을 강요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경우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상의 원칙이자 국제 인권규범이다.

하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과연 최소한의 규제일까.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표현의 자유다. 본래 표현의 자유란 익명 표현의 자유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내부 고발자는 자기 의사를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신분이 노출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실질적인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즉 국가가 획일적으로 도입하는 실명제는 '떳떳한 사람만 글을 쓰라'는 말이어서 심각한 헌법적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들어 개인 정보보호에 대단히 민감하다. 이는 인격적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재산상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2003년 주민등록번호 도용 범죄가 6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다른 나라처럼 주민등록번호의 민간 이용을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실명제라는 이유로 크고 작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할 경우 이 정보들이 꼭 실명 확인에만 사용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는가.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국장

*** 찬성

▶국회의원들이 면책특권이라는 우산 속에서 아무 근거 없는 일로 상호 비판하고 헐뜯는 모습을 보면서 흥분하거나 심지어 욕을 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무책임한 글들을 보면서 과연 국회의원들을 욕할 자격이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제 우리부터라도 익명성이라는 우산을 벗어버리고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당당하게 비판하는 문화를 정립해야 할 때다.

▶자꾸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데,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그렇다면 여태 오프라인상에서 이뤄진 수많은 창작물은 전부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은 상태에서 나온 것인가. 한국에서는 주체사상.공산주의 옹호할 때와 포르노를 인정해 달라는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를 들먹인다. 자유만 좋아하고 책임은 싫어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좀 버렸으면 한다.

▶요즘엔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자유로이 컴퓨터상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것이 이로울 때도 있지만 반면 수치스러울 정도로 심한 욕설과 비방의 글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표현하게 됨으로써 사이버상에서는 폭력의 글들이 난무한다. 따라서 자신의 신분을 확실히 밝힌 뒤 지적할 것은 확실히 지적하고 또 올바른 것은 격려의 글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참여의식이라 하겠다.

▶대포전화를 없애고 실명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인권침해인가? 신호등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양보하며 운전하자고 주장해 보라. 종량제 감시 안 하고 매일같이 남의 담벼락 아래 쌓여가는 쓰레기들을 보게 되기를 원하나? 실명제로 우리들의 인격과 주권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대신 정부가 개인 정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면 된다.

▶책임질 수 없는 자는 말해서는 안 된다.

*** 반대

▶인터넷 게시판이 쓰레기장인 건 인정하지만, 이는 회원제 게시판의 운영 등으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누군가의 통제하에서 살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실명제를 도입하면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 가장 이익을 받을 텐데, 국가권력이 모든 사람을 평등한 잣대로 보호해주는지는 의심스럽다.

▶내가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는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년. 반.번호까지 세세하게 입력해야만 회원가입이 된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이 거의 없다. 잘못 올렸다가 무슨 낭패를 볼지 모르는 까닭이다. 학생의 쓴소리를 듣지 못하는 학교는 발전하지 못한다. 정치적 유언비어 따위가 무섭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짓밟아선 안 된다. 현재 자율적으로 실행되는 것을 법제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정략적 이유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이 공산주의 국가인가. 단순히 눈앞의 편의를 위해 그런 통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후진국형 사고방식이다. 단기적으로 잃는 것이 많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래저래 통제할 바에는 차라리 박정희 대통령 시대로 돌아가든지.

▶전 세계 어디에도 인터넷 실명제를 하는 나라는 없다. 오로지 한나라당만이 어떡하든지 입을 막을 궁리만 한다. 언론자유를 탄압하는 표본이다.

▶정보는 강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실명제를 도입하면 처음에는 취지가 좋아 스팸도 많이 사라지고, 욕설하는 것도 줄어든다. 하지만 실명제를 실시하는 데 따른 정보 유출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도 집으로, 휴대전화로 가입을 권유하는 마케팅이 너무 지나치다.

◇'온&오프 토론방'의 다음 주제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법연수원 수료생의 판사 임용 탈락 어떻게 생각하나'입니다. 인터넷 중앙일보 사이트 www.joongang.co.kr에 김광기(변호사).김선수(변호사)씨 찬반 의견이 올라 있습니다. 독자 토론 내용은 9일자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