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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론의 감시·비판 제한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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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법원은 엊그제 언론의 비판 보도로 공직자의 명예가 훼손됐더라도 악의가 없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언론 본연의 비판.감시기능과 공직자의 사적(私的) 권리가 충돌한 경우에 언론의 기능을 더 중시한다는 선언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 소송을 낸 전직 검사는 "편파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한 반면 방송사 쪽에선 "사기 혐의 피의자를 이중으로 기소했는지 확인을 구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고 맞서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명예훼손을 인정하면서도 원심 판결을 깨고 언론사에 배상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언론의 감시와 비판기능은 악의적이거나 상당성을 현저히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등 민주국가에서도 비슷한 판례가 축적돼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기관이나 공직자들의 언론중재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국가기관.공공단체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중재신청은 모두 224건으로 전체 신청건수(724건)의 30.9%를 차지했고, 전년도의 65건에 비해 3.4배로 증가했다. 이처럼 중재신청 건수가 급증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와 무관치 않다. 정부의 이러한 과잉대응 때문에 언론의 비판기능이 위축될 소지가 있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

언론의 자유는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 보도 내용이 법적 보호를 받으려면 기자가 이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사실확인 노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담당 기자가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한 점을 인정해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은 필수적이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언론을 묶어 두려는 중재신청이나 소송은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