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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빅게임 없는 경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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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각 당의 공천작업이 한창이다. 단수 후보를 정하는 '낙점식'은 마무리 단계다. 하지만 상향식 공천, 즉 경선은 각 당 모두 이제 시작이다.

경선은 4.15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이다. 밀실.낙하산 공천 시비에서 벗어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어 기대도 크다.

경선은 그 자체로 선거운동이다. 예비주자들의 표 대결엔 해당 선거구 유권자의 관심이 집중된다. 승자는 인기와 지명도가 급상승하는 보너스도 얻는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니 꿩 먹고 알 먹고다.

경선의 위력은 지난 대선 때 입증됐다. 한나라당에 크게 뒤지던 민주당은 드라마틱한 대통령 후보 경선으로 노풍(盧風)을 일궈냈다.

최근 각 당은 자신들의 경선을 홍보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역사적 정치실험' '선거혁명'이라며 미사여구를 총동원하고 있다. '공천권을 정치 보스의 손에서 국민에게 돌려드린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초반 성적은 어느 당 할 것 없이 낙제점이다.

이틀 전에는 선거인단 1000여명을 못 구해 경선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지역은 인구 24만명에 유권자가 19만명이나 되는 선거구인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어렵사리 경선이 성사된 곳 중에도 1백표, 2백표 득표로 공천을 따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면 대표성 시비가 뒤따른다.

외형뿐 아니라 내용도 문제다. 참신하면서도 지명도 있는 신인이 토착 후보에게 참패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물갈이는커녕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역(逆)물갈이 현상이다. 그래서 경선 무용론이 나오고, 야당의 경우 이를 핑계로 유명무실한 경선을 하거나 계획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물론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부족한 데 있다. 하지만 정당들은 애초에 이를 감안해 여러 가지 묘수를 동원했다. 당원이 많은 곳은 당원 경선, 아닌 곳은 일반 유권자를 참여시키는 국민경선, 이도 저도 어려운 곳은 여론조사 방식의 경선을 도입한 것이 그 사례다.

이 때문에 경선 흥행 실패의 진짜 이유는 엉터리 운영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이번 경선에선 빅 게임이 없다. 각 당 공천심사위는 다선.중진이나 지명도 높은 신인 등 '스타'들은 몽땅 단수 추천으로 낙하산을 태워 공천을 줬다. 대신 그 지역 유권자도 이름을 모르는 무명 인사들만 도토리 키재기식 경선을 붙이고 있다. 이래서야 손님이 몰리는 게 이상하다. 영국 노동당은 현역.다선 의원들도 의무적으로 선거인단의 재선발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거물 예우가 없는 것이다. 그래야 본선 경쟁력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각 당은 "경선하면 조직이 깨진다"고 회피 이유를 대나 역시 궁색하다. 실제 이런 이유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거 브로커다. 애당심이 있는 당원이 경선 불복 후보를 따라갈 리 없다. 잘 치른 경선의 득(得)은 조직 분열로 인한 실(失)보다 크다.

각 당 공천심사 과정에서는 주류가 비주류 신청자를 물먹이기 위해 경선해야 할 곳을 건너뛰는 경우가 보인다.

공산당식 만장일치가 불가능한 이상 대의민주주의.정당정치에서 경선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다수결 원리를 무엇으로 대체하겠는가. 이런 민주주의의 ABC가 안통하는 정치는 발전이 없다. 그런 정당은 궁극적으로 선거에서 살아남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모처럼 도입한 우리의 의원 후보 공천자 경선 제도는 퇴출 위기로 몰리고 있다. 상향식 공천이 정당들의 준비 부족과 엉터리 운용으로 다음 총선에선 자취를 감추게 될까 걱정이다.

김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