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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떠나는 소풍

중앙일보

입력

나의 도시로, 그리고 그 이웃 도시로 걷기 소풍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듣기에도 낯설고 이상한 모임이다. 도시를 걷는다는 것만큼 도시적이지 않은 행위가 또 어디 있는가. 그러나 비도시적인 활동이긴 해도 지극히 인간적인 활동인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사는 도시, 바로 이곳을 내 발로 누비는 것은 도시의 정주민으로 살기 위한 즐거운 축제! 용인의 지역 거주민들 중심으로 꾸려진 동백산악회의 ‘도시 소풍’을 잠깐 엿들어보시라.

WH 안녕하세요, 이웃 도시 곳곳을 여행 다니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지 소개해주시겠어요?
동백산악회(이하 동백) -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는 아니고 그냥 순수한 산악회입니다. 저희가 모두 용인동백지구에서 살고 있거든요. 신도시로 입주를 시작한지 2년이 넘어가는데 대부분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낯선 곳에 와서 아는 이도 별로 없고 삭막한 분위기에 적응하려니 쓸쓸한 생각이 절로 들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악회를 조성하게 됐죠. 그렇게 모여서 산에 오르다 보니까 용인이라는 도시가 이제 이곳이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닌 우리들의 따뜻한 둥지로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용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됐죠.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정붙이고 살기 시작하면 속속들이 다 알고 싶고 그렇잖아요. 친구 사귀는 거랑 똑같이…. 또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바깥사람들에게 더 진솔하게, 더 제대로 소개도 할 수 있을 테고요.
활동을 하다보니까 뭣보다 회원들 건강이 무척 좋아졌어요. 두 발로 열심히 걸어 다닌 것 밖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회원들끼리 수시로 모여서 걷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는데, 기왕 걸을 거라면 무언가 의미 있는 테마를 정해놓고 행하자 싶었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웃 도시 여행하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용인에서만 머물다가 어째 일이 좀 커진 셈이죠.(웃음)
내 고장과 더불어 이웃 도시의 지형과 문화를 동시에 공부한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걷기운동이 아닌 타인과 타 지역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활동이거든요. 회원들 평균 연령대가 불혹을 넘긴지 오래 돼서 그런지 이제는 우리자신들만의 행복뿐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자꾸 고민하게 됩니다. 대규모 인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작은 움직임이 이 사회에 작으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WH 최근에는 어디에 다녀오셨나요?
동백 - 우리가 산을 오르내리면서 체력을 다진 덕분에 평지에서도 꽤 장거리 도보가 가능한 사람들이에요. 1박을 기준으로 하면 보통 80km이상씩 걷습니다. 이름하야 ‘1박 2일 80km 코스’가 되는 셈인데, 용인시에서 안성시까지 다녀온 게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이게 거리가 약 85km쯤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일단 출발은 용인시 이동면 샘골에서 했어요. 묵리계곡 ~ 검은쟁이 ~삼덕의길 ~ 학일리 고초골 ~ 용인시 축구센터 ~ 두창리 ~백암면 ~안성시 삼죽면 ~ 보개면 ~ 고샘면 ~ 양성면 미산리 ~ 이동면 천리. 이게 완주 코스죠. 하루에 약 40km씩 1박2일간 알차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웃도시 안성을 직접 걸어보니까 북동부의 삼죽면, 중북부의 보개면과 고삼면, 서북부의 양성면이 특히 인상적이더군요. 용인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 같아서 질투가 날 정도였습니다. 삼죽면은 쌀이나 고구마, 표고버섯 같은 게 풍부하게 나요. 기회가 되면 여기 비봉산 죽주산성에 꼭 한번 올라보세요. 또 고삼면 고삼저수지 아름다운 건 너무 유명하니까 두 말 하면 입 아프고요. 양성면에 가면 조병화시인의 문학관도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WH 한겨울, 수십km씩 행군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은데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요?
동백 - 무슨 말씀이세요. 동장군 기세등등한 요즘이야말로 길 위에 놀 거리가 널렸습니다. 눈이 많이 오면 올수록 더욱 신나게 놀 수 있죠. 애들만 눈 놀이 하란 법 있습니까? 길을 가다가 눈 덮인 언덕이 나오면 어디 버려진 비료포대라도 없나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이, 저희들 마음에도 아직 동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지요.(웃음) 가던 길 멈추고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도심에서는 듣기 힘든 눈 밟는 소리를 한참 감상하기도 해요. 뽀드득거리는 그 상쾌한 소리를 그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삼십 여 년 전 군대에서, 신물이 나도록 눈 더미와 싸우면서 내 다시는 눈을 밟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새하얗게 쌓여있는 눈을 보면 꼬리 흔드는 강아지마냥 마구 신이나니 도리 없습니다. 아, 일단 좋은 걸 어쩌겠어요. 그렇게 한참 걷다가 취사 가능한 공간이 드러나면 너도나도 기쁨에 들떠서 삽시간에 파티 모드로 돌변합니다. 기자님은 한겨울 길 위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맛을 절대로 모르실 거예요. 우리는 정말 삼겹살을 최고로 맛있게 먹는 법을 알지요. 돌 판에 구어야 맛있다느니 기왓장에 구워야 맛있다느니 말이 많지만 사실 삼겹살은 길 위에서 먹어야 가장 맛있어요. 거기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면 그 감동에서 헤어 나올 길 없으니 아무도 책임 못 집니다. 그 맛 때문에 꼬박 출석하는 회원들도 있는걸요. 그러니 열심히 안 걷고 배길 수가 없죠.(웃음)

WH 이 모임에는 용인지역 분들만 참여 가능한 것인지요?
동백 - 그저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길을 떠나는 건데 용인시민 아니라고 회원 자격을 제한할 이유는 없죠. 다만 수시로 시간 날 때마다 모여서 떠나니까 가능하면 같은 지역 분들 참여도가 높기도 하고, 그게 편하기도 하고 그런 거죠.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두루 조화롭게 살고, 행복하게 살자는 뜻에서 여기저기로 걷기 시작한 건데 그에 반하는 제약이 있다면 그건 말도 안 되죠. 다른 지역 분들만 환영하는 게 아니고, 다른 행성에서 오셔도 환영입니다.(웃음) 그 어떤 곳에서 사는 분들이라도 저희와 함께 길 위에서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다면 언제든 반갑게 맞이할 테니 염려들 놓으세요. 지역이나 연령 성별 등 무엇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함께 걷는 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지요.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카페에 들러주세요. (www.cafe.daum.net/mtcamp)

WH 앞으로 여행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동백 - 지금껏 해왔듯 매월1회 이상 계속됩니다. 방학 철이라 그런지 요새는 외부 손님들의 방문이 잦아서 이 기회에 용인시를 함께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짜볼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예부터 용인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지로 유명하잖아요. “생거진천 (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어요? 앞으로 우리지역 도보여행코스는 저희들에게 맡겨주세요. 쉬지 않고 쭉 이어나갈 생각이니까요.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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