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노트] 'VIP 계단' 끝내 못 없앤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달 28일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청와대 참모진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노무현 대통령 내외는 1층 오른쪽 화장실 옆에 있는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노 대통령 일행이 예매한 '메세나석'은 2층 뒤편에 위치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1층 로비에서 옛 '로열 박스'로 올라가는 계단은 굳게 닫혀 있었다. 드물게 VIP 관객이 뭇사람의 시선 속에 붉은 카펫을 밟으며 올라가던, 금빛으로 수놓인 계단이다.

세종문화회관 개.보수 이후 달라진 것은 '권위주의의 산물'로 지적돼 온 2층 로열 박스를 헐어낸 점이다. 로열 박스 뒤편의 영사실도 없애면서 일반석으로 만들려다 논란 끝에 27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단체석으로 바꾸었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의 '스카이박스석'을 연상하면 된다. 건축 공학적으로 양쪽 기둥을 없애기 힘들어서라고 한다. 후원 기업 등 단체 관객에게 통째로 판매한다고 해서 '메세나석'이라고 이름붙였지만 음향이나 시야 면에서는 2층 앞쪽의 R석에 크게 못 미친다. 청와대에서 '메세나석'을 예매한 것도 별도의 칸막이가 있어 경호에 편리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VIP 계단'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세종문화회관 개관(1978년) 직후 청와대의 지시로 설계에도 없던 것을 새로 보탠 것이다. 이번 개.보수 공사에서 로열 박스는 헐어냈지만 정작 문제의 계단은 없애지 못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예산이 부족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로열 박스로 향하는 중앙 계단은 지난해 12월부터 리모델링 공사 중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도 있다. 이 경우는 국립극장을 설계한 측에서 '건축 작품'이라며 손을 대지 않고 있다. 리모델링 공사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는 국립극장의 설계자가 설립한 회사다.

두 곳의 'VIP 계단'은 로비 공간을 비좁게 하고 관객의 통행에도 불편을 끼친다. 리모델링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건물을 고치는 것은 관객과 연주자에게 쾌적하고 능률적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 아닌가.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