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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13.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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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데모가 시작됐다. 국대안(國大案.서울대 신설 계획) 반대 데모다. 히틀러처럼 생긴 박형일(朴亨一)이 리더였다. 천관우.진필식(陳弼植).김흥한(金興漢).김봉호(金鳳鎬) 등이 뭉쳐서 움직였다.

박형일.진필식이 학부로 올라가자 천관우가 리더가 됐다. 그는 대부분의 학생으로부터 호감을 사고 있었다. 말이 조리가 있고 행동이 단호했다. 그러나 그에게 대항하는 좌측의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예과 신문을 발간해 도도한 이론을 펼쳤다. 나는 그와 함께 편집을 했다. 청주고 출신이라는 데 호감이 갔지만 그쪽도 나를 알아주는 것이 고마웠다.

북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함경도.평안도.황해도에서 온 친구들은 이따금 왕래를 했다. 38선을 넘나들 때의 에피소드가 재미는 있었지만 심상치 않았다. '따와이'라는 말이 널리 알려졌다. 소련 말로 '달라'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가져간다고 했다. 시계 같은 것을 따와이 해 몇 개씩이나 팔뚝에 차고 있을 로스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꽁무니에 빵을 차고 다닌다는 이야기. 요강을 식기로 알고 음식을 담아 먹었다는 이야기,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 등이 재미있고도 걱정스러웠다.

국대안은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학생회에서는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천관우와 단짝인 학생 중에 홍승면(洪承勉)이 있었다. 경기중 출신으로 일본 히로시마고에서 왔다는데 말과 행동이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신랄했다.

여순고에서 온 최덕환(崔德煥)이 또 물건이었다. 경복중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파고다공원 건너편에 커다란 백화점을 지은 최남(崔楠)이라는 분이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휘두르며 열변을 토하는 최덕환의 모습을 보면 청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청주중에서 온 김원식(金源植)은 천관우와 동창으로 나하고는 같은 괴산 출신. 잘 다듬어진 얼굴에선 차분한 판단이 번뜩였다.

평안도 선천 출신 안현우(安賢祐)는 시인이었다. 진주 출신 구평회(具平會)는 순하게 따라 다녔다. 괴산이 고향인데 평안도 가서 살았다는 김상경(金象卿)은 노래를 잘 불렀다. 황해도 연백에서 왔다는 김종도(金鍾道)는 예쁘장한 얼굴로 내 꽁무니를 잘 따라다녔다. 함흥에서 온 한영철(韓永喆), 청주중 출신 윤억현(尹億鉉), 함경도에서 온 윤하정(尹河珽), 강릉 함외과 아들 함홍근(咸洪根).

최덕환네는 충신동 큰 부자라 그룹처럼 돼버린 우리를 이따금 집으로 데리고 가 잔칫날 같이 대접해 주었다. 그의 열변은 좌중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꼭 끝에 가선 나를 쳐다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보다 댓살 정도 더 먹었기 때문에 형님 노릇을 하는 격이 됐다. 우리는 청량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종로5가까지 걸어나가 동숭동을 향해 데모 행진을 했다. 경찰과 부딪친다. 격투장처럼 난장판이 됐다가 몇 사람 끌려간다. 끝까지 부르짖는 소리는 국대안 반대! 싫다, 이놈들아!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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