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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살리나스의 敎訓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멕시코 경제부흥의 기적을 이룬 인물로 칭송받았고 퇴임후 세계무역기구(WTO)초대 사무총장 후보로 강력한 물망에 올랐던 살리나스 前 멕시코대통령이 미국(美國)으로 도주했다는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한때 가망이 없다던 멕시코 경제를 다시 되살려냈고 北美자유무역협정(NAFTA)창설의 주역으로 미국과 협조관계가 두터웠던 인물로 부각됐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때 한 후보는 자신도 살리나스처럼 한국(韓國)의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다짐할 만큼 그의 경제적 성취는 외국에 인상적인 것으로 비쳤었다.살리나스를 망명토록 만든 직접적 원인은 물론 지난해 유 세중 피격돼사망한 여당의 대통령후보 암살사건에 그의 형 라울이 개입했고 그 사건에 살리나스도 연루되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관계 전문가들은 이것이 이른바 멕시코에서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어온 「과거청산」의 또 다른 사례일 따름이라고 보고 있다.말하자면 멕시코판 백담사행(百潭寺行)이라는 것이다.
멕시코는 사실상 1黨국가다.여당인 제도혁명당은 극우(極右)에서 극좌(極左)까지 모든 세력을 포용하는 일종의 「종합정당」이다.마치 우리의 민정당(民正黨)이나 민자당(民自黨)같다.이런 정당이 탄생한 배경은 멕시코 혁명후 각 정파간의 끝없는 정쟁과유혈충돌을 막기 위한 타협의 결과였다.
모든 정파를 포용하다 보니 이 당은 근 60년이상 정권을 독점해 왔다.당내의 권력승계가 곧 정권승계가 되는 이런 유일당(唯一黨)체제에서 절대적 권한이 한사람에게 집중되면 독재가 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대통령의 6년 단임(單任 )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한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절대적이다 보니 그 다음 승계자는 전임자의 그림자를 지우는 「과거청산」을 하지않을 수 없었다.결과적으로 어떤 대통령이든 한번 대통령이 되면전임자의 세력을 청산해야 하고 다음에는 자신의 청산에 대비하지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그래서 당선이 되면 어떤 방법을 쓰든 한밑천을 단단히 모아두었다가 퇴임하자마자 국외로 망명을 하는 것이었다.국외망명은 거의 예외없이 반복돼온 멕시코정치의 관행이었다.그것이 멕시코경제를 좀먹는 암적(癌的)인 요소였다.
많은 사람들은 살리나스대통령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경제부흥의 신화와 미국의 강력한 지원 때문이었다.그러나 그 역시그의 가문이 치부(致富)하는 것을 묵인했고,마침내 그 가문의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를 암살 하는 그의 가족의 행위에 책임을 지게된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친.인척이 설치는 것을 방임한 죄이며,부패를 막지 못한 업보(業報)인 것이다.살리나스의 망명사건이 우리의 3,5,6共 권력승계 과정과 너무 비슷하게 진행되어가는것은 참으로 기묘하다.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부자같았다던데 5共은3共을 「숙정」했다.형제같다던 전두환-노태우(盧泰愚)대통령간의권력승계과정에서는 백담사행이 있었다.그것이 권력의 속성일는지도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버릴때가 되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시스템을 바꿀 때가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권력의 과도한 집중행태를 억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과거와 비슷한 권력집중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금과 같은 헌정(憲政)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어물어물하다가는 통치권 누수(漏水)현상이 생길지도 모 르는 단임제에선 집권자는 정책수행의 필요를 위해서도 권력집중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끼지 않을까.
***單任制따른 부작용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이제는 대통령제면 연임(連任)을 가능토록 하는 정상적인 대통령제로,그렇지 않으면 다른 체제로 헌정질서를 바꾸는 검토를 해야 한다.그리고그런 헌정변화를 중심으로 현재의 기묘한 3당합당과 동거의 혼합체제도 재 편되어야 한다.
경제가 중요하다.그러나 우리처럼 경제활동이건,행정체제건 할 것없이 정치바람을 많이 타는 곳에서는 권력왜곡을 막는 정치시스템의 정상화가 가장 본질적인 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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