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핵 명확히 신고 안 하면 적성국 해제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끌어내는 데 난항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 행정부의 대북 협상정책에 대한 워싱턴 강경파의 제동이 거세지고 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기 위해 지난달 31일부터 3일간 북한을 방문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2일 “북한이 핵 신고 목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평양발 고려항공편으로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김 과장은 기자들에게 “방북 기간 중 북한 외무성 관리들과 만나 신고 문제를 논의했다”며 “북한에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촉구했으나 신고 목록을 제출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애머스트대학 강연에서 “우리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믿고 있다”고 말해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 신고에 유연한 접근을 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북한이 우리(미국)에게 제시할 플루토늄 총량이 30~40㎏쯤 될 것 같다”고 말해 북한이 플루토늄을 최소한 50㎏ 보유하고 있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샘 브라운백, 래리 크레이그, 존 카일, 척 그래슬리, 존 코번, 제임스 이노프 등 미 상원의원 6명은 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에게 “북한이 완전하고 정확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하기 전엔 어떤 약속도 해줘선 안 된다”며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확산을 검증 가능하게 중단할 때까지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어 “민주선거로 당선된 한국의 이명박 신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동안 미국은 북한에 어떠한 약속이나 경제 지원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브라운백 의원 등 공화당 중진 상원의원들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는 처음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이들은 미 행정부 협상파가 노무현 정부와 손을 잡고 마지막 대북 유화책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고 판단, 이를 막으려고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운백은 지난해 12월에도 조셉 리버먼 등 상원의원 3명과 함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북한과 시리아, 헤즈볼라 간의 관계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추궁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부시의 국정연설 당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부시의 전 연설보좌관 마이클 거슨도 2일 워싱턴 포스트 칼럼에서 “힐 등 협상파는 북한을 협상장에 앉혀 두려고 일체의 비난과 압박을 포기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진전보다 절차를’이란 제하의 칼럼에서 안보리 제재 재검토와 인권 문제 제기 등 대북 압박책으로 돌아설 때라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은 김 과장의 방북에 폴 헨리 백악관 안전보장회의(NSC) 6자회담 및 중국과장을 동행시켜 국무부의 대북 협상에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부가 추진한 북한의 핵 프로그램 단계별 신고안도 부통령실과 NSC 일각에서 “신고서에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과 핵 확산에 관한 정보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